자급자족/자연과 하나 되기

관계의 자유를 확대하기 위해

모두 빛 2010. 8. 14. 16:34

 

 

 

자연이 주는 삶은 참으로 무궁무진한 거 같다. 꿈꾸는 삶이 먼 미래가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가능하니 말이다. 그런 꿈 가운데 하나가 ‘관계에서의 자유’다.

 

나로서는 8월 한 달 여러 손님을 치렀는데, 어제도 젊은이 셋이 왔다. 우리말을 이제 막 배우기 시작하는 20대 중반 재일교포 아가씨, 우리말을 인사밖에 할줄 모르는 30대 초반 일본 아가씨와 통역 겸 자연의 삶을 희구하는 30대 초반 우리나라 젊은 총각.

 

자연, 생태 이런 삶을 추구하고자, 전국 곳곳의 사람을 찾아 여행 중이란다. 우리 집을 택한 직접적인 인연은 아내가 지은 책 <자연 그대로 먹어라>였단다.

 

사실 우리는 손님을 맞기 전까지 제법 까다롭게 군다. 이를 좋게 표현하자면 사람관계에서의 자유를 원하기 때문이다. 그 구체적인 방법으로는 만나기 전에 많은 걸 묻는다. 왜 오려고 하느냐? 무얼 나누고 싶으냐? 관심 분야가 뭐냐? 좋아하는 요리나 할 줄 아는 요리가 뭐냐? 이런 걸 시시콜콜 묻는다. 특히나 먹는 걸 중요시 한다. 그뿐 아니라 손님 자신들이 잘 하는 요리를 기꺼이 나누어 주길 바란다.

 

더 나아가 우리는 누군가가 우리 집에 그냥 손님으로 오는 걸 원하지 않는다. 되도록 주인 자세로 참여하길 바란다. 나 역시 손님으로 가서, 대접을 받기만 하면 불편하다. 차라리 일도 같이 하고, 음식도 같이 해서 나누어 먹는 게 더 편하지 않는가.

 

우리는 이런 과정을 거쳐 손님을 좀더 깊이 알게 되고, 손님과 물적 정신적 교류를 나누고자 하는 것이다. 사상이란 거창한 그 무엇이라기보다 바로 일상의 소소한 일들 하나하나와 다 맞닿아 있을 테니 말이다. 그리고 뭐든 구체적일수록 삶은 더 풍요롭기 마련.

집에 온 손님들이 묻는다.

“무슨 재료가 있나요?”

“감자, 양파, 가지, 오이, 피망, 당근, 부추, 우리밀가루...”

자기네들끼리 뭐라고 상의를 하더니

“음, 호우도우(不動)를 해 볼 게요.”

 

호우도우(不動), 일본 야마나시 현의 토착 음식이란다. 우리나라 음식 가운데는 수제비와 비슷한데 간단히 레시피를 적어본다.

1-밀가루를 반죽해서 숙성을 시킨다.

2-다시국을 낸다.

3-감자, 양파, 당근, 부추 들을 2와 함께 푹 익힌다.

4-3에다가 된장(미소)을 풀어 간을 한다. (우리나라 된장으로 해도 된다. 미소는 살짝 단맛이 나는 데, 마침 몇 달 전에 왔던 일본 손님이 주고 간 미소가 남아있었다.)

5-숙성된 반죽을 얇게 뜯어, 4에 넣고 익히면 된다. 싱거우면 소금을 추가.

 

손님들이 만들어준 호우도우는 우리 수제비보다 조금 더 걸쭉하고, 단맛이 조금 더 나며, 야채가 아주 많이 들어간다.

 

이렇게 한 상 잘 차려먹고, 신나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우리네 삶을 알고 싶어왔지만 우리는 손님한테 궁금한 게 많아 우리가 되레 많이 물어보았다. ‘Walk9 운동’이란 것도 알고, 일본의 귀농 흐름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다. 일본은 우리나라보다 귀농이나 자연 회귀 흐름이 앞서있단다. 다만 귀농운동본부와 같은 단체 힘은 크지 않단다. 대신 뜻맞는사람들끼리 소모임 형태로 많이 어울린단다. 하여, 관련 잡지도 엄청 다양하단다. 일본인 료코는 <신비한 밭에서>를 쓴 자연농법가인 가와구치와도 가끔 만난다고 했다.

 

계속 이야기만 하면 재미가 없는 법. 료코가 작은 기타처럼 생긴 우쿨렐레를 가져왔다니 연주와 노래를 안 들을 수가 없다. 몇 곡 더 듣고 났더니 우리 쪽에서 답가를 부탁한다. 우리 아들이 피아노 연주를 했다. 이어서 손님들과 노래와 연주를 계속 주고받았다. 나 역시 내가 작사 작곡한 ‘목숨꽃’이란 노래를 불렀다. 그러다가 료코가 우리네 장구 장단을 배우는 데 참 좋단다. 즉석에서 장구를 꺼내어 장단에 맞추어 춤을 춘다. 하나 둘 추다가 여럿이 함께. 그러다가 본격 춤. 잘 추는 춤은 아니지만 탱고 음악에 맞춰 즉석에서 거실을 돈다.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는 간단한 스텝과 텐션을 가르쳐주면서...밖에는 천둥과 번개가 쉴 새 없이 친다. 그래서인지 춤추는 분위기가 더 로맨틱하다. 번개만 없다면 마당에서 비를 맞으며 춤을 추는 것도 로망의 하나일 텐데..

 

한바탕 땀을 흘리고 다시 이야기 모드. 이번에는 촛불을 켜고 대화를 나누었다. 왜 자연의 삶을 살고자 하는가? 동기가 무엇인가. 한 친구는 거식증(음식을 거부하는 증세)이 있었는데 이를 치유하는 과정에서 자연과 만나게 되었단다. 또 한 친구는 이런 삶을 전혀 모르다가 Walk9에 참여하고 새로운 세상에 눈을 떴단다. 가슴 짜한 이야기들이 많았다.

 

 

자연은 우리에게 많은 낭만을 주기도 하지만 때로는 따끔한 교훈을 주기도 한다. 이날도 그랬다. 사실 이야기란 아무리 나누어도 끝이 없다. 이 정도에서 마무리하고 자자고 했다. 각자 씻고 잘 준비를 하는 과정에서 사고가 발생. 한 친구가 자신들이 몰고 온 차 문을 열고 닫다가 그 문에 손가락이 끼인 것이다. 피가 났고, 응급처지를 했다. 다행이 큰 사고는 아니었다.

 

이번 손님을 맞으며 내 생각을 정리하자면 이렇다. 사람 관계에서 나를 원하는 사람과 내가 원하는 사람이 같을 때 관계의 자유가 가능하다. 그리고 이 자유를 확장하자면 스스로 자급자족하는 힘을 키워, 자립할 수 있어야 한다. 즉 많은 걸 남에게 기대지 않고도 살아갈 힘이 있을 때, 관계의 자유는 넓어진다. 이렇게 힘이 생기면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사람 역시 늘어난다. 또한 보고 싶지 않는 사람이라면 보지 않을 자유도 늘어난다. 이런 힘이 부족할 때는 관계가 주는 자유보다는 관계가 주는 아픔이나 상처 또는 질곡이 더 클 테다.

 

관계의 자유는 사람만이 아니다. 곡식이나 짐승 또는 도구나 돌멩이와도 관련이 있다. 나는 곡식을 원하는 데 곡식은 나를 원하는가. 하여, 곡식과 관계의 자유를 잘 누리자면 씨앗 갈무리가 중요하다. 나는 차를 원하는 데 차는 나를 원하는가. 나는 말벌을 원하지 않는데 말벌은 왜 우리 집 처마를 원하는가. 이런 질문들을 잘 해나갈 때 관계의 자유는 무한히 넓어지고 깊어진다. 그렇지 않다면 언제든 말벌에 쏘일 수 있고, 독사에게 물릴 수 있으며, 차에 부딪혀 다칠 수 있다.

 

자립과 자급자족하는 힘만큼 자유로움도 커지지 않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