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되니 밭에 풀이 쑥쑥 자란다. 겨우내 움추렸던 광대나물, 냉이, 개망초, 쇠별꽃. 이제는 쑥도 살그머니 고개를 내밀어 번지기 시작한다.
무경운 농사에는 이 봄풀 잡기가 아주 중요한 일이다. 땅을 갈지 않고 농사를 짓자면 김매기는 연중 계속 되는 일이기도 하다. 특히나 이른 봄에 왕성하게 자라는 풀을 잡지 못하면 다른 계절에는 곡식을 심고 싹을 틔우는 것조차 어렵다. 쇠별꽃은 뻗어가기 시작하면 봄에 감자조차 구덩이를 파고 심기를 어렵게 한다.
무경운에 풀을 잡는 방법은 크게 김매기와 피복이 있다. 피복은 풀에 따라 다르지만 10센티 이상 두툼하게 덮어주어야 한다. 왕겨나 볏짚 그리고 산에 검불을 끌어다가 덮는다. 그런데 이렇게까지 마른 검불을 덮기가 쉬운 일이 아니다. 또 한 해가 지나면 대부분 비에 삭아 거름이 되거나 미생물 먹이가 되어 흔적이 없어진다. 그러니 피복은 부지런하면서도 쉼이 없어야 한다.
그저 시나브로 하면 좋은 방법은 김매기. 일년 내내 틈나는 대로 김을 맨다. 그러면서 나물도 먹고. 봄에는 봄나물, 가을에는 가을나물. 겨울에도 무경운 밭에는 나물이 가능하다.
그런데 나물을 먹는 데는 한계가 있다. 그러다 보면 김매기가 일이 된다. 무슨 일이든 그렇지만 때를 놓치면 일이 두 배 세 배 커진다. 나중에는 손을 쓸 수 없을 정도로 커져버리는 게 김매기다. 그럼, 기계 유혹을 받는다. 단 한번에 확!
이번에는 새로운 실험을 하나 하기로 했다. 닭장을 이용한 김매기다. 사진에서 보듯이 이동식 닭장을 만들어 밭에 두는 거다. 이동식 닭장은 치킨 트랙터(chicken tractor)라고도 한다. 닭을 이용한 밭갈이가 되겠다.
이동식이니까 작게 짓는다. 내가 만든 크기는 사람이 둘이서 들어서 옮길 수 있고, 시중에 판매되는 자재 크기에 맞추어보았다. 규격이 가로 세로 70*180인 가벼운 PP 슬레이트 두 장 크기. 뼈대는 빗물이 바로 들이치지 않게 지붕보다 조금 작게 짓는다. 높이 역시 자재를 기준으로. 옆면은 폭 1미터 20센티 철사로 된 그물망으로 하기로 하고 기둥 높이를 110센티로 했다. 나머지 10센티는 땅 밑으로 외적이 침입하지 못하게 늘어뜨린다.
그 다음 횟대 설치. 횟대는 닭에게 아주 중요하다. 잠자고 알 낳는 걸 나무 위에서 하던 습성이 있기에 꼭 해주어야 편안하게 알을 낳고 잠을 잔다. 기둥이 110센티 높이 정도니까 닭이 횟대로 뛰어올라 가자면 지붕과 횟대 사이 여우 공간이 필요하다. 횟대 높이는 바닥에서 60센티 정도로 했다. 횟대는 대나무로 두 개로 하고 중간에 알을 낳게 둥지를 만들었다. 나머지 자재는 다 4센티 정도 각재로 했다.(기둥은 형편에 따라 앵글을 이용한 조립식으로 해도 되고, 건축 현장에서 쓰이는 받침틀을 구해도 된다.) 이렇게 해서 재료에 든 값은 모두 5만원 남짓.
다 만들고 들어보니 생각보다 무겁다. 밭에서 둘이 힘을 잔뜩 써야 될 정도로 무겁다. 이를 집에서 밭으로 옮기는 건 경운기로 했다.
닭장을 밭에 내리고 바닥을 마무리 한다. 밭은 고랑이 있기에 닭장 그대로 놓으면 고랑 사이로 닭이 나오기도 하고, 고양이이나 족제비가 닭장으로 들어가 닭을 해칠 수도 있다. 특히 삵은 위험하다. 삵은 한꺼번에 다 죽인다. 벽면 아래 10센티 늘어뜨린 망에 돌이나 통나무를 걸쳐 막는다. 마지막으로 물통과 모이를 넣고 닭 세 마리를 옮겼다.
하루가 지나 어찌 되었나 보니 닭장 안에 풀을 거의 다 먹었다. 게다가 닭은 흙이나 모래 목욕을 좋아한다. 바닥에 퍼질러 앉아 한쪽 발로 땅을 세차게 긁는다. 그러면서 동시에 날개를 마구 흔든다. 그럼 흙과 모래가 깃털 사이로 세차게 들어간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깃털 사이에 사는 진드기나 작은 벌레들을 털어내고자 하기 때문. 그야말로 닭 목욕이다. 보는 것만으로 시원하다. 닭에게 흙이나 모래는 소화를 위해서도 필요하니 이동식 닭장은 닭에게도 참 좋은 환경이다. 또한 닭똥은 거름으로 더할 나위 없이 좋기도 하다.
문제는 옮기는 일이다. 무거워서 혼자 하기가 벅차다. 얼핏 떠오르는 건 옮길 때 닭장 밑으로 통나무를 넣고 굴리면 되지 않을까. 대신에 닭이 닭장에 익숙해지는 시간이 필요하다. 저녁 해 지기 한 시간 전 쯤에 닭을 닭장에서 내어 놓고 닭장을 옮기면 좋을 듯. 해가 지면 닭은 닭장으로 다시 들어오니까.
이렇게 이동식 닭장으로 넓은 땅을 다 무경으로 하기는 어렵다. 이틀에 한번 꼴로 옮겨준다면 300제곱미터를 다 하는 데만도 석 달쯤 걸린다. 적어도 곡식을 본격적으로 심게 되는 5월 초까지만 가능하다. 길게 보면 가을걷이 끝나고 이른 봄까지 가능하다. 곡식이 자라는 철에는 풀이 많이 나는 길가로 옮겨주어야 한다.
어쨌든 경험이 쌓이면 논에도 이동식 닭장을 넣어볼 생각이다. 논은 평평하니까 관리도 쉬울 듯 하다. 새로운 시도, 새로운 경험들이 앞으로 어찌 펼쳐질지? 두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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