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급자족 삶을 추구하다 보니 사람 관계도 다시 보게 된다. 그 전에는 솔직히 내개 득이 되는 사람을 위주로 사귄다. 친구도 의사나 변호사 또는 기자처럼 이 사회에 명망 있고 권력도 있는 사람을 한 사람이라도 더 사귀고 싶었다. 몸이 아프면 의사만한 친구가 없고, 분쟁에 휘말리면 변호사가 간절하다. 또 이 세상 돌아가는 내밀한 정보를 파악하자면 아무래도 정보 접근성이 좋은 기자들 입을 빌리고자 했다. 그런데 이런 친구들은 바쁜데다가 나 자신이 이들의 친구가 될 만큼 위치에 있지 않기에 만남이 꾸준히 이어지기가 어려웠다.
그런데 최근 10여년 사람 관계를 돌아보면 참 많이도 달라졌다. 우리보다 먼저 자급자족 삶을 추구하는 이웃을 사귀면서 새로운 인간관계에 눈을 떴다. 자신이 가진 걸 대가 없이 나누고, 이웃이 자급할 수 있게 아낌없이 지혜를 나누어주는 이웃들.
처음 산청에 내려왔을 때 우리 식구에게 살 집을 빌려준 이웃부터 그랬다. 약간 종교적인 마음이 없지는 않았지만 우리 식구에게 믿음을 강요하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이 분들이 우리 식구에게 베풀어 준 건 참 많았다. 집도 그냥 빌려주고, 수리도 해 주셨다. 집 둘레 텃밭도 내가 지을 수 있는 능력만큼 빌려주었다. 그 때는 아내가 대안 학교 교사를 하고 상상이가 어려서 내가 지을 농사란 그리 많지 않았지만 이를 통해 자급자족농사의 재미를 톡톡히 맛보았다. 이 당시에 이 분이 하는 과일나무 가꾸기와 표교버섯 재배는 마술에 가까웠다.
또 다른 이웃인 해강이네는 우리에게 자급자족 삶에 대한 정신적인 지혜를 팍팍 주었다. 앞날에 대한 불안감을 씻어주고, 자급하는 구체적인 기술들에 대해 막힘없이 가르쳐주었다. 이 뿐만이 아니다. 먹을거리도 자주 얻었다. 어느 해 인가는 이 이웃은 곶감이 잘 되어 처마에 주렁주렁 말라가고 있었다. 우리 식구가 부러워하자 그 자리에서 곶감 한 접을 뚝 따서 그냥 주는 것이다. 황공하고 감사하고 고맙고 부끄럽고 든든하고...내 안에 잠자던 모든 감정이 깨어날 만큼 느낌이 강렬했다.
이 이웃은 철학이 분명하다. 자연주의를 기초로 자급자족하는 삶이다. 우리보다 먼저 먹을거리와 자녀교육을 자급하기에 배울 게 늘 많았다. 심지어 나 자신의 내밀한 갈등에 대한 상담까지 할 정도로 믿고 기대던 이웃이다. 이분들과는 세월이 갈수록 관계도 점점 깊어진다. 이 이웃은 우리가 농사로 어느 정도 자급구조를 갖추자 우리 식구에게 많은 믿음을 보여준다.
사실 사람 관계란 늘 쉽지 않다. 서로의 기대치가 다르기에 어긋나기 쉽다. 기대치를 맞추기 위해 서로 솔직하면 좋은 데 이것 역시 쉽지 않다. 그런데 이렇게 자급자족 삶을 추구하는 이웃들과 사귀다 보면 관계 맺기도 자급자족을 따른다.
자신이 가진 걸 나누되 대가를 바라지 않는다. 이는 내가 <피어라, 남자>에서도 썼지만 품앗이보다는 ‘품 나누기’다. 그런데 품 나누기가 되자면 서로의 관계도 그만큼 성숙해야 한다. 손수 하는 힘을 키워 이러저러한 사회 분위기에 크게 흔들림이 없어야 한다. 돈이나 시간 그리고 사람관계에 휘둘리지 않을 정도 힘. 돈이 많아 자유로운 게 아니라 자신이 필요한 돈은 언제든 스스로 벌 수 있는 자신감이 중요한 것이다. 돈조차 자급자족으로 보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단계까지 올라가자면 결코 그저 되는 게 아니다. 몸과 마음이 거듭나야한다. 자연을 믿고, 자연에 기초하여 생명활동을 꾸려가듯이 우리 몸과 마음의 자연성을 아낌없이 살려갈 때 가능한 단계다.
이렇게 자급자족의 단계를 높여 가다보면 여러 인연을 맺게 되고 또 쌓게 된다. 사람 관계를 에너지 흐름으로 보면 관계가 한결 재미있고 쉽다. 품앗이와 달리 ‘품 나누기’는 자연스럽게 흐르는 흐름이다. 우리에게 넉넉한 에너지는 부족한 이웃에게로 흐르고, 마찬가지로 우리에게 부족한 에너지는 넉넉한 이웃을 사귀면서 그 에너지를 자연스럽게 당겨온다. 나로서는 이렇게 품을 나눌 수 있는 이웃이 많아지는 세상을 꿈꾼다.
가족신문, 천연비누 나누기
그런데 이러한 품 나누기는 긴 세월을 보고 슬근슬근 풀어갈 과제다. 나로서는 품 나누기 전단계로 물물 교환을 생각한다. 내가 가진 걸 내놓고, 내게 부족한 걸 얻는다. 원시 시대 물물 교환은 흥정이 따른다. 그런데 자급자족 형태의 물물 교환은 원시 흥정과 좀 다르다. 정을 주고받고자 하는 마음이 먼저다.
그동안 여러 사람들과 이런저런 물물교환을 했다. 여기 마을 이웃들과는 교환관계가 조금 잦은 편이다. 지역을 넓혀 조금 멀리 보면 최근에는 부안으로 귀농한 빈이네랑 물물교환을 했다. 빈이네는 우리 홈피를 통해 인연을 맺고 우리 집도 방문을 했으며, 그 이후 이런저런 자리에서도 가끔 만나는 사이. 우리 식구가 낸 책을 즐겨보는 이웃이라 우리 식구 역시 가깝게 느낀다.
이 집 식구는 지난 한 해 농사도 열심히, 자식농사도 알콩달콩, 집짓기도 부지런히 배우고 있다. 또한 천연비누를 손수 만들어 블로그(http://blog.naver.com/)를 통해 판매도 한다. 그런데 빈이네는 아직 쌀농사를 짓지는 못했다. 이 집은 쌀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번에 내가 낸 책 <피어라, 남자>를 구하고 싶단다.
이럴 때 마침 우리 집에서 쓰던 천연 비누가 달랑 하나만 남았다. 이 참에 빈이네와 물물교환을 하자. 전화를 하니 좋단다. 비누 하나에 3천원, 20개 하니까 6만원이다. 우리는 현미쌀과 책을 합쳐 그기에 적당한 가격으로 보냈다. 택배는 서로 선불로.
택배로 온 비누 상자를 받자, 향기가 진동한다. 상자를 뜯자 간단한 선물도 들어있다. 천연비누도 재료에 따라 종류가 가지가지다. 쪽지에 비누 설명이 나와 있다. ‘화학재료를 전혀 사용하지 않고 100% 천연오일로 만들어 한 달 이상 숙성시킨 비누’란다. 나로서는 이런 설명이 없더라도 사람을 믿는다. 믿음이 있기에 물물교환을 하고, 그 교환으로 믿음은 더 커진다. 비누를 쓸 때마다 빈이네가 떠오른다.
제주도 성학이네와는 조금 또 다른 에너지 교환이다. 성학이네는 아이 셋 다 학교를 다니지 않는다. 이 집 역시 <아이들은 자연이다> 책과 우리 홈피를 통해 인연을 맺은 사이. 덕분에 우리 식구는 제주도 여행을 가서 이 집에서 먹고 자고 대접을 잘 받았다. 이 뿐 아니라 이 집은 한 달에 한번 꼴로 가족신문을 낸다.
이 신문을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홈피 교육 게시판에도 글을 올렸듯이 기다려지는 신문이다. 성학이네는 이 신문을 아무 대가 없이 그냥 보내준다. 그렇지만 우리 식구는 성학이네한테 받기만 하기가 미안했다. 제주도는 쌀이 귀한 곳. <피어라, 남자> 책 나온 김에 쌀이랑 책을 함께 보냈다. 이는 물물 교환이라기보다 마음 교환이 먼저라 해야겠다.
그렇지만 앞서 산청 이웃이 아무 대가 없이 기쁘게 주고받는 관계라면 성학이네와 관계는 아직 ‘품 나누기’로 완전히 녹아들지는 않다. 이게 뭔 말인고 하면 아낌없이 받고 아낌없이 주는 관계까지는 아니라는 뜻이다. 그렇게 나아가자면 서로가 좀더 자급단계가 높아져야한다. 기회가 되면 성학이네와 또 한번의 만남을 통해 관계 확장을 꽤하고 싶다.
출판사와 관계도 자급자족을 생각한다. 어느 새 우리 식구는 책을 다섯 권이나 냈다. 책마다 출판사가 다 다르다. 일부러 그런 건 아니다. 인연 따라 자급자족에 기초한 관계다. 우리는 억지로 책을 내거나 하지 않는다. 우리가 자급자족에 기초하여 중심이 선 만큼 출판사도 독자도 만나게 된다.
그러니 사람을 두루 많이 사귀는 처지에서 보면 우리네 이웃 관계는 한심할 정도로 적다. 자신의 에너지는 적은 데 너무 많은 사람을 만나게 되면 지치기 쉽다. 나는 지금과 같은 사람 관계에 어느 정도 만족한다. 한 사람이 평소에 관계하는 사람 수는 천차만별일 것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을 만나느냐 보다 얼마나 깊이 만나느냐 또 그 만남을 통해 무엇을 주고받느냐가 더 중요하지 않을까. 나는 에너지와 영감을 주고받는 이웃이 좋다. 그러자면 우선 나 자신부터 사람됨의 기본 중심이 잘 서있어야 하지 않겠나. 사람 관계의 자급자족을 다시 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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