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부 김광화의 몸 공부, 마음 이야기 ⑪] |
잃어버린 내 리듬을 찾아 덩실덩실…아, 무한의 경지가 여기 있었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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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화 농부 flowingsky@naver.com |
점잔 빼던 김광화씨가 춤바람이 났다. 물론 카바레에 맛들였다는 말은 아니다. 오묘한 춤의 세계에 빠졌다고 할까. 춤으로 말미암아 상처가 아무는가 하면, 심연의 명상에 빠지기도 한다. 어깨뿐 아니라 손, 눈, 입술, 혀까지 들썩거리다 보니 어느새 얼굴은 밝아지고 묵은 미움도 스르르 녹았다. 그는 그렇게 봄 맞을 준비를 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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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햇살이 오를 때, 식구들이 하나 둘 거실로 모인다. 자연이가 음악을 튼다. 고요한 음악이 흐르고 누군가가 춤을 춘다. 음악이 바뀌고 리듬이 조금 빨라진다. 나 또한 하던 일을 멈추고 몸을 흔든다. 곧이어 힘찬 음악 ‘DOC와 춤을’이 나온다. 제 방에서 뭔가를 하던 무위마저 뛰어나온다. 이 녀석은 온 집안 구석구석을 펄쩍펄쩍 뛰어다니며 춤을 춘다. 입으로는 노래를 부르며 몸을 흔든다. ‘춤을 추고 싶은 때는 춤을 춰요, 할아버지 할머니도 춤을 춰요, 그깟 나이 무슨 상관이에요~, 다 함께 춤을 춰봐요, 이렇게~’ 우리가 추는 춤은 자유롭다.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춤이 아니라 자신을 위한 춤이다. 굳이 설명을 붙이자면 몸을 푸는 춤이고, 몸이 가는 대로 흔드는 춤이다. 눈을 감고 자기만의 몸짓으로 추다가도 식구들 몸놀림을 본다. 처음 보는 몸놀림에 내 몸도 어느새 새로운 몸놀림을 따른다. 어지간히 몸을 흔들었는지 아내는 아침밥을 짓기 위해 가스 불을 댕긴다. 이렇게 우리 식구가 다 함께 춤을 추는 건 아주 최근에 생긴 풍경이다. 돌아보면 내게 춤은 아주 쑥스럽고 어색한 몸짓이었다. 살다 보면 춤을 추어야 하는 자리가 가끔 있다. 회식자리나 잔칫집에서 여흥이 무르익으면 하나 둘 춤을 춘다. 그럴 때 나는 몸둘 곳이 마땅치 않았다. 핑계를 대자면 ‘자의식이 강하다’고 할까. 먼저 일어난 사람들이 내 옷깃을 당겨도 뿌리치곤 했다. 그러다가 앉아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을 만큼 분위기가 무르익으면 마지못해 따라 일어난다. 춤이라고 해봐야 나무토막처럼 흔드는 막춤이었지만.
‘자연으로 들어가는 멋진 문’
그러던 내가 바뀌고 있다. 몸 쓰는 일을 많이 하다 보니 어느새 춤과도 만나게 된다. 그러니까 지난 여름이었다. 아내의 둘도 없는 친구이자 내 친구이기도 한 바람소리(닉네임)가 우리집에 들렀다. 당시 친구는 ‘춤 치료(Dance Therapy)’에 흠뻑 취해 있었다. 친구는 하던 일을 자의반 타의반으로 정리하는 과정에서 극심한 우울증을 겪었는데, 이를 이겨내는 과정에서 춤 치료를 만났다고 했다. 나는 치료보다는 춤에 관심이 많아 친구에게 이것저것 물어보았다. 이 기회에 춤을 어려워하는 나 자신을 고치고 싶었다. 무엇보다도 친구가 말하는 춤은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정형화된 춤이 아니라 자신을 위한 춤이라는 말이 마음에 들었다. 친구가 다섯 가지 리듬을 알려주었다. 첫째 리듬이 흐름(flowing). 현실을 바로보고 받아들이는 리듬이란다. 둘째는 드러내기. 밖으로 자기 색깔을 드러내는 것, 즉 선택을 말한다. 셋째는 내던지기. 선택한 것에 온몸을 던진다. 넷째가 영혼의 노래. 자기 내부에 있던 것들이 위로 올라온다. 자신도 모르게 무의식적인 춤이 나온다. 마지막으로 침묵의 춤. 자기만의 춤이며 가장 아름답단다. 친구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어렵게만 느껴지던 춤이 가깝게 다가온다. 다섯 가지 리듬은 우리 일상의 몸놀림과 여러모로 연결된다. 낮과 밤, 계절의 흐름을 늘 겪으며 산다. 또 단순 반복하는 일도 있지만 온몸으로 해야 하는 일도 많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자기만의 몸짓이 나올 때가 있다. 그럴 때는 춤을 추고 싶었다. 친구한테 리듬에 따른 춤을 가르쳐달라고 했다. 맨 정신에 춤을 추는 게 쑥스러웠지만 그 고비를 넘기니 친구를 따라 출 수 있었다. 친구가 돌아가고 나서 춤이 계속된 건 아니다. 한동안 춤을 잊고 지내다가 이번에는 박태이(47)씨가 하는 춤 명상(Dance Meditaion)을 알게 되었다. 춤과 명상. 얼른 느끼기에는 두 글자의 연결이 잘 안 된다. 춤이 몸을 활발하게 움직이는 거라면 명상은 고요히 자신의 내면으로 들어가는 게 아닌가. 그런데 두 글자가 하나가 되니 뭔가 또 다른 깊이가 느껴진다.
그이가 하는 춤 명상을 직접 보니 아주 새롭다. 생각했던 춤과는 거리가 멀다. 춤이라고 하기에는 운동 같고, 운동이라고 하기에는 어떤 흐름과 리듬이 있다. 마치 강물이 흐르는 모습이라고 할까. 수많은 요가 동작이 끊이지 않고 이어진다. 그이의 몸짓은 마치 뼈가 없는 사람처럼 부드럽다. 보는 것만으로도 황홀하다. 그러다가도 강물이 폭포를 만난 양 격렬한 몸짓도 나온다. 그이는 몸으로 춤을 추면서 입으로는 강의를 이어간다. 박씨도 우울증으로 몸이 망가졌다가 춤을 통해 거듭났단다. 인도에서 명상하는 도중, 몸에서 저절로 춤이 터져나왔다고 했다. 그이는 춤을 추면서 엉망이던 몸뚱이가 어느덧 정상으로 돌아옴은 물론 몸이 갖는 신비로움을 깊이 체험하면서 이를 명상법으로 체계화하여 세상에 알리고자 나선 것이다. 나 또한 몸이 망가졌다가 다시 살아나면서 몸의 신비로움을 느끼고 있어 그의 이야기에 쉽게 공감했다. 춤 명상을 간단히 요약하자면 이렇다.
“Shall we dance?”
‘명상 상태로 들어가는 여러 가지 방법 중에 춤을 수단으로 이용하는 것이다. 춤은 원래 우리의 삶이며 우리의 숨결이다. 축제 분위기에서 춤이 나오듯 자연스럽게 춤이 일어나도록 한다. 내면에서 살아 꿈틀거리는 몸짓을 끌어내어, 몸의 흐름에 내맡기며 그저 따라간다. 그러다 보면 춤을 춘다는 사실조차 잊고 춤 그 자체가 된다. 춤과 춤추는 이의 구분이 사라질 때 명상이 일어난다. 춤은 자연스럽고 손쉽게 명상상태로, 즉 자연으로 들어갈 수 있는 가장 멋진 문이다.’ 이론은 그럴듯하지만 몸으로 익히는 데는 시간이 필요했다. 사실 내가 춤 명상을 배우는 이유는 내 몸을 돌아보자는 데 있다. 같은 동작을 반복하다 보면 몸이 굳어지기 쉽다. 농사가 자연에 가까운 일이지만 그 하나하나 몸짓은 사실 자연스러운 몸놀림에서 대부분 벗어나 있다. 삽질, 낫질, 모내기, 도끼질. 그 모두가 따지고 보면 자연스럽지 않은 몸놀림이다. 글을 쓸 때도 그렇다. 때로는 내 안에서 솟구치는 글쓰기가 아닌 끙끙대는 몸짓이 있다. 자연스러운 몸놀림을 벗어난 몸짓은 몸부림이기 쉽다. 농사를 짓다 보면 춤이 나오기도 한다. 들깨를 털 때도 춤이 나오고, 기장을 거둘 때도 춤이 나온다. 지난 가을걷이 때 그랬다. 마당에 말리던 기장 이삭을 털었다. 도리깨로 대충 두드렸지만 이삭에서 다 떨어지지 않은 열매들이 남았다. 도리깨보다 발로 문지르는 게 더 빠르겠다 싶어 기장 이삭을 한 움큼씩 바닥에 놓고 발로 비볐다. 한 발로 비비다가 두 발로 비볐다. 몸을 오른쪽 왼쪽으로 번갈아가며 틀어야 잘 비벼진다. 저절로 트위스트가 된다. 동글동글 작은 기장 낟알들이 볼 베어링 구실을 하는 것 같았다. 몸이 잘 미끄러졌다. 일이 춤이 될 수 있구나! 갑자기 의식이 확장된다. 일이 춤이 된다면 춤도 일이 될 수 있지 않겠나. 이제는 춤을 의식하며 기장을 비빈다. 리듬을 살려가며 비빈다. 발만 비비는 게 아니라 허리도 흔들흔들, 팔도 몸 따라 출렁출렁. 자세도 낮추고 덩실덩실. 시간이 지나자 힘이 든다. 아직도 털어야 할 기장이 많이 남았다. 혼자 하자니 춤도 재미가 없다. 아내를 찾는다. “Shall we dance?” 아내는 이유도 묻지 않고 따라온다. 마당에 펼쳐진 앞뒤 정황을 보더니 바로 알아챈다. 내가 원하는 게 뭔지를 빤히 안다. 둘이서 신나게 ‘기장 춤’을 추었다. 처음에는 바닥에 깔린 기장만 보고 흔든다. 그런데 춤이라 생각하면 이 자세는 상대방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아내와 마주보았다. 웃음이 나온다. 어느새 기장은 안 보고 아내 몸놀림만 보며 흔든다. 그러다 아래를 보니 기장 낟알은 떨어지다 못해 노랗게 껍질이 벗겨진 것도 있다. 이삭은 하도 비벼 너덜너덜해졌다. 지난 12월초, 자연이가 3박4일 일정으로 춤 테라피를 배우러 가겠다고 했다. 듣던 중 반가운 소리였다. 아이가 잘 배워와, 식구들에게 가르쳐주면 얼마나 좋겠나. 춤 테라피에서 보조강사를 하는 친구에게 우리 식구 네 사람 몫을 가르쳐달라고 했다. 자연이는 우리 식구 춤 선생이 되었다. 이번 겨울에는 눈이 자주 온다. 산골 겨울은 몸을 움츠리기 쉽다. 추우니까 늦게 일어나고 일찍 해가 지니까 일찍 집안에 갇힌다. 거기다가 눈보라까지 치면 낮에도 밖으로 나가기가 꺼려진다. 몸은 덜 움직이고 아무래도 책을 보거나 컴퓨터를 많이 하게 된다. 그러다 보면 몸의 활력은 떨어지고 생각만 많아진다.
분노를 털고, 귀를 씻고
움츠러드는 몸을 살리고자 춤을 춘다. 춤이 좋아 춤을 추고, 음악이 좋아 춤을 춘다. 글을 쓰다가도 막히면 춤을 춘다. 손님이 오면 손님과도 춘다. 집이 좁아도 어렵지 않다. 자기 몸짓을 풀어낼 틈새는 어디에나 있다. 식구가 함께 추기도 하지만 혼자 출 때도 있다. 단조로운 생활을 벗어나고자 추기도 하지만 분노를 털어버리고 싶을 때도 춤을 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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