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식구가 함께 산에서 산나물을 뜯고 있다. 저마다 자기 길을 간다.
홍화꽃이 핀 밭고랑을 기어갈 때는 황홀하다. 노랑, 주황, 빨강이 어우러진 홍화꽃이 내 눈을 잡아끈다. 여름에는 곡식이 무성하게 자라 밭고랑에 엎드리면 그늘도 더 짙다. 뜨거운 햇볕이 싫어 한 고랑 일이 끝나면 일어서지도 않고 얼른 다른 고랑으로 몸을 숨긴다. 그야말로 곡식 숲에 들어온 듯 마음이 차분해진다.
그렇게 일하다 보면 가끔 네 발 짐승이 가진 본성이 살아나는 걸 느낀다. 네 발로 밭고랑을 기다가 풀이 적은 곳에서는 엉덩이를 들고 네 발로 달려본다. 얼마 못가 주저앉는다. 사람이 수만년 동안 직립보행을 하니 사람 허리가 땅이랑 수평이 안 되어 있다. 팔목은 단련이 안돼 몸무게를 오래 견디지 못한다. 무릎 꿇고 일하기는 팔목이랑 팔뚝 힘을 강하게 한다. 하체보다 상체가 약한 내게 알맞은 운동인지도 모르겠다.
무릎 꿇는 데 맛을 들이자 나중에는 아예 생활 속에서 이를 두루 응용하고 싶어졌다. 산골에 살다 보니 자연의 본성이 살아 있는 이들이 좋다. 그래서인지 가끔은 어린아이들과 친구가 되고 싶다. 우리집에 오는 아이들과 마음을 나누고 싶을 때면 무릎을 꿇는다. 아이들 눈높이에 내 눈이 있을 때 아이들은 쉽게 마음을 연다. 갓난아기를 볼 때는 좀 더 자연스럽게 무릎을 꿇는다. 아기의 맑은 영혼을 받아들일 수 있는 자세인 셈이다.
몸 버릇 고치기
몸이 보내는 신호에 마음이 열리자 몸과 마음은 서로 관심을 갖는다. 혁명이 시작되면 끊어지지 않고 이어지는 게 영구 혁명이다. 그런 점에서 몸 혁명은 영구 혁명이 아닐까.
한번은 아침을 먹는데 잇몸이 시큰시큰 했다. 아니, 이럴 수가! 무엇이 잘못된 걸까. 당장 내 몸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탈이 난 곳은 왼쪽 어금니 쪽이었다. 밥을 먹으며 찬찬히 내 몸짓을 있는 그대로 살폈다. 밥이 입에 들어가자마자 왼쪽 어금니로 간다. 밥뿐만 아니다. 김치도 왼쪽으로, 딱딱한 멸치 반찬도 왼쪽으로. 멸치처럼 딱딱한 것일수록 왼쪽 어금니에 더 많이 의존하고 있었다.
나만 그런가. 우리 아이들에게 물어보니 아이들은 오른쪽, 왼쪽 골고루 간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나도 모르는 사이에 씹는 버릇이 한쪽으로 굳어진 것이다. 게다가 양치를 하는데 무의식적으로 칫솔이 왼쪽보다 오른쪽으로 먼저 가는 게 아닌가. 힘든 일은 왼쪽 잇몸이 다 하고, 보살핌은 오른쪽 잇몸이 먼저니 탈이 날 수밖에. 제대로 보살핌을 받지 못하고 무리하던 왼쪽 잇몸이 아픔을 호소하기 시작한 셈이다.
잇몸을 고치기 위해서는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했다. 밥 한술 입에 넣을 때부터 씹어 삼킬 동안 씹는 데 집중해야 했다. 잠깐 딴 생각을 하거나 식구 사이 대화에 끼여들다 보면 금방 입안에 음식이 왼쪽으로 옮겨가는 것이다. 그럼, 아픈 잇몸이 신호를 보낸다.
이참에 잇몸을 제대로 고치고 싶다. 틈틈이 잇몸 운동을 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입을 다물고, 어금니끼리 서로 부딪혀 침이 고이면 삼킨다. 혓바닥을 죽 뻗어 잇몸을 부드럽게 문질러준다.
웬만큼 잇몸에 힘이 붙자 잇몸 운동을 생활화했다. 날마다 의식적으로 잇몸 운동을 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딱딱한 음식을 밥상머리에 두고 밥 먹기 전에 조금씩 씹었다. 생쌀을 조금씩 천천히 씹으며 잇몸과 대화했다. 이제는 말린 밤을 후식으로 한두 개씩 씹을 정도로 잇몸이 거의 정상을 회복했다. 얼추 6개월쯤 걸린 것 같다. 거실 한구석에 말린 밤, 해바라기씨 그리고 호박씨가 들어 있는 항아리 세 개가 있다. 호박씨와 해바라기씨를 먹으려면 딱딱한 껍데기를 앞니로 까야 한다. 씨앗은 앞니 잇몸 운동에 안성맞춤이다. 말린 밤은 어금니 쪽 잇몸 운동에 그만이다.
내 버릇을 알고 또 이를 고쳐가면서 점점 내 몸이 궁금해졌다. 지금 당장은 아픔으로 나타나지 않더라도 몸의 불균형이 또 있지 않을까. 내 몸놀림을 찬찬히 살펴보니 불균형이 뜻밖에도 심각한 수준이다. 단적인 게 오른손잡이. 삽질, 괭이질, 도끼질. 그 모두 오른손 중심이다. 그러니 어깨부터 삐딱하다. 어깨 관절을 돌려보면 오른쪽 관절이 부드럽지 못하다. 왼손은 운동신경이 둔하다. 오른손이 무리를 계속 해왔다면 왼손은 오른손을 주로 ‘보좌’해왔기에 저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다.
이를 한꺼번에 고치기는 어려울 것 같다. 힘쓰는 일이나 속도를 필요로 하는 일이 많으니까 시간을 갖고 고쳐가야 하리라. 우선, 내 몸이 불균형하다는 자각을 생활화할 필요가 있겠다. 그 한 가지 방법이 왼손으로 밥 먹기다. 반찬은 오른손으로. 밥 먹는 일이야말로 천천히 할수록 좋지 않은가. 왼손으로 밥을 뜨니 조심스럽고 느리다. 양손으로 밥 먹는 모습은 내가 봐도 신선하고 재미있다. 습관을 깨는 데는 그만큼의 재미랄까 동기가 있어야 하는데 양손 식사는 아주 그만이다. 차츰 익숙해지면서 가끔 젓가락질도 왼손으로 해본다. 손놀림이 아주 서투르다. 젓가락질을 처음 배우는 어린이마냥 호기심이 생긴다. 뼈마디마디 관절 운동이 재미있고 신기하다. 그러다가도 무의식적으로 오른손 중심으로 젓가락질이 빨라지면 자신을 돌아본다. ‘무엇이 그리 급한가.’ 말하자면 젓가락 명상이다.
몸에 대해 아이 같은 호기심이 생기자 몸 이야기라면 귀가 열린다. 이웃을 만나도 몸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한다. 먹을거리는 물론 자연 분만과 아이들 양육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눈다. 일하는 자세에 대해서도 의견을 나누며 서로를 북돋우곤 한다.
명절 때 친지들이 모였을 때도 그랬다. 지난해 추석 때였다. 추석 하루 전날, 친지들이 다 모여서 송편을 함께 빚으며 이야기를 나누다 새로운 사실을 알았다. 대구에 사는 우리 조카 명선(8)이가 요가를 잘 한단다. 이게 웬 떡이냐 싶다. 몸에 대한 호기심이 발동해 명선이에게 요가 동작을 보여달라 했다. 누워서 아치 자세를 취하는데 정말이지 몸이 공처럼 휜다. 식구 모두, 와! 하는 함성과 함께 박수가 터져나오고 주문이 이어졌다. 몸을 자유자재로 휘고, 구부리고, 돌린다. 한마디로 경이롭다. 둘러앉은 김에 식구 모두 명선이를 따라 요가를 해보았다. 분위기가 좋아서인지 어머니도 함께 했다.
명선이 따라 요가를 함께 하며 절실히 깨달은 건 내 몸이 떠나 너무 굳어 있다는 사실이다. 여성이 남성보다 평균적으로 몸이 부드럽다고는 하지만 여러 식구 가운데 내가 가장 몸이 뻣뻣하다. 양 다리를 벌리면 명선이는 거의 180。에 가깝다. 나도 150。 되지 않을까 싶어 따라 해보니 어림도 없다. 잘 봐줘서 90。 정도다. 조금 더 가랑이를 벌리면 가랑이가 찢어지는 듯한 고통이 오면서 중심이 휘청, 뒤로 털썩 주저앉는다. 또 허리 굽혀 팔을 뻗으면 손가락 끝이 겨우 발가락에 닿는다. 아직도 농사일을 하시는 어머니도 일흔이 넘었지만 나보다 허리가 부드럽다.
명선이처럼 아치 자세를 흉내내어 보니 한마디로 가관이다. 얼굴은 피가 몰려 벌개지기만 하고 머리는 방바닥에서 조금도 떨어지지 않는다. 자꾸 낑낑대봤자다. 몸치도 지독한 몸치다. 나이 50이 다 된 남자가 애처럼 누워서 낑낑대니 친지들은 즐거워한다. 명절날 친지들에게 웃음보따리를 선사한 걸로 나를 위로해야 했다.
걸레질 요가
그날 명선이와 어머니의 몸짓은 내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몸이란 나이만의 문제가 아니구나. 나도 부드럽고 싶다. 몸이 뻣뻣하다고 후회하기에는 아직 젊은 나이가 아닌가. 청춘을 되찾기는 어렵겠지만 내 몸뚱이는 내 뜻대로 하고 싶다.
당장에 요가 책을 샀다. 요가 기본자세가 실려 있는 종이를 냉장고 문에 붙여 놓고 틈나는 대로 했다. 몸에 관심이 본격적으로 생기자 무예에도 관심을 갖게 되었다. 가을걷이가 끝나고 전통 무예인 수벽치기를 배웠다. 그리고 예전부터 배우고 싶었던 태극권을 틈틈이 익히고 있다.
이제는 운동을 바라보는 시각이 바뀌었다. 일이 운동이고, 운동이 일이 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나. 시간을 정해 놓고 꾸준히 운동하기는 정말 어렵다. 귀찮기도 하고 시간에 쫓길 때는 까마득히 잊기도 했다. 운동을 삶 속에서 자연스럽게 할 수는 없을까.
우선 몸을 알아야 했다. 몸을 많이 쓴다고 몸을 잘 아는 건 아닌 것 같다. 오히려 몸을 잘 모르면서 몸을 많이 쓰는 건 몸이 굳어지는 지름길이지 싶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시간이 갈수록 심해질 것이다.
몸을 아는 데는 여러 가지 길이 있다. 책을 통해 공부할 수도 있고, 몸을 찬찬히 관찰하는 방법도 있다. 하지만 몸치에서 벗어나는 걸 목표로 삼으니 이론보다 몸으로 직접 해야 한다. 몸으로 익혀야 몸에 배지 않겠나. 몸을 제대로 배우고 익히고 깨닫기만 한다면 몸을 많이 쓰는 만큼 이 몸도 달라질 것이다
 |
 |
공처럼 휘어지는 조카 명선이의 요가 자세. 다시 봐도 부럽다. 쩝!
요가를 익히면서 그 동작 하나하나를 일에 응용해보고 있다. 걸레질부터 요가 식으로 해본다. 걸레질 과정에서 온갖 몸짓이 나온다. 나만의 요가라고나 할까. 우선 걸레를 두 손으로 잡고 편안하게 앉는다. 두 발을 넓게 벌리고 바닥을 걸레로 천천히 밀고 당긴다. 보통 때는 멈추었을 지점에서 숨을 멈추고 몸을 조금만 더 앞으로 숙인다. 그러면 허리뿐만 아니라 허벅지와 배는 물론 온몸 근육이 팽팽해진다. 힘줄이랑 인대에도 느낌이 온다. 호흡도 깊어진다.
점차 몸 컨디션이나 방바닥 상태에 따라 온갖 변형 동작이 나온다. 허리가 많이 굳어 있다 싶으면 허리 비틀기나 굽혀 닦기를 많이 한다. 그러다가 새로운 동작도 해본다. 앉은 자리에서 엉덩이를 옮기지 않고 얼마나 넓게 닦을 수 있는지 실험도 해보았다. 우리집 거실은 작다. 네 평 정도다. 네 번만 엉덩이를 옮기면 온갖 요가 자세로 다 닦을 수 있다.
걸레질이 요가가 되고 요가를 걸레질로 하니 하루에 한두 번은 하게 된다. 또 운동하면서 청소하니까 시간 배분이 경제적이다. 점점 삶이 바빠지는 추세에 잘 어울리는 운동이지 싶다. 걸레질이 끝나고 나면 몸과 마음이 개운하다. 집안 분위기도 덩달아 좋아진다.
걸레로 닦는 순간순간을 ‘몸 느낌’으로 받아들이다 보면 이따금 색다른 청소도 하게 된다. 좀처럼 닦지 않던 책상 아래 좁은 틈 사이에도 손이 간다. 걸레를 천천히 밀다가 책상 아래에서 몸을 한 호흡 더 앞으로 뻗다 보니 작은 틈새로도 자연스럽게 손이 간다. 고개가 뻣뻣하다 싶은 날은 갑자기 위를 올려다보면서 청소가 하고 싶다. 까치발 딛고 두 팔을 잔뜩 뻗고 고개는 한껏 뒤로 제쳐 냉장고 위나 창문 위를 닦기도 한다.
움직이고 또 움직인다
가끔 시간에 쫓길 때는 걸레질이 요가가 아니라 일로 바뀌어 동작이 빨라진다. 그럴 때는 자신에게 자꾸 말을 건다. ‘이건 일이 아니고 요가야, 요가! 요가를 그렇게 빨리 하는 법이 어디 있니.’
낮 동안 대부분의 시간을 논밭에서 보내니 ‘농사 요가’야말로 다채롭다. 농사와 요가는 천천히 한다는 점에서 코드가 잘 맞는 것 같다. 삽질이든 고무래질이든 빨리 하면 쉽게 지쳐 일 자체가 안 된다. 고무래질이란 모내기 하려고 써레질한 논을 고무래로 반반하게 고르는 일이다. 논흙이 곤죽이 되면 논에서 몸 움직임이 쉽지가 않다. 일이 서투를 때는 고무래질이 끝나고 나면 한동안 끙끙 앓아야 했다. 이제는 천천히 고무래를 밀고 당긴다. 요가에서 배운 대로 깊은 호흡과 다양한 자세로 밀고 당긴다. 그래도 일은 예전보다 결코 늦지 않다.
밭에서는 땅바닥에 주저앉을 수 있으니 논보다 더 다양한 자세가 나온다. 김매기도 요가 운동이 되지만 빽빽하게 심은 당근을 솎아주거나 토마토 곁순을 따주는 동작도 변형해서 할 수 있다. 어떨 때는 몸을 비트는 맛이 좋아 요가 동작으로 몇 시간씩 밭일을 할 때도 있다.
‘삶의 요가’는 걸레질, 농사일만이 아니라 삶 곳곳에서 한다. 신문을 보면서도 한다. 가슴 펴고 숨을 천천히 들이쉬며 읽다가 숨을 내쉬며 몸을 앞으로 숙이며 읽는다. 자세히 읽고 싶은 기사는 골반을 여는 자세로 천천히 허리를 숙이며 읽는다. 천천히 하니까 글자 읽기에는 무리가 없다. 손님들과 이야기 나누는 동안에도 몸을 가볍게 움직여준다. 몸이 굳어 있으면 상대방 말을 건성으로 듣게 된다. 허리든 고개든 풀어주면서 들으면 훨씬 잘 들린다.
하나만 더 보기를 들자면 달리는 차 안에서도 가능한 동작이 있다. 차가 커브를 돌 때 원심력이 생긴다. 그럼, 몸이 구심력을 느낀다. 이 느낌을 살리는 것이다. 커브가 보이면 우선 운전대를 부드럽게 잡는다. 그럼, 내가 운전을 하고 있구나 하는 느낌이 바로 온다. 안전 운전에 대한 의식이 확 깨어난다. 시야도 넓어지고, 속도도 저절로 줄어든다. 몸이 쏠리는 구심력을 느끼며 천천히 허리를 옆으로 굽힌다. 차와 한몸이 되는 기분이다.
운동에는 느린 동작이 있듯이 빠른 동작도 필요하리라. 빠른 운동이라면 쉽게 생각할 수 있는 게 달리기다. 그런데 건강만을 마음에 둔다면 달리기는 솔직히 재미가 적다. 그러나 몸이 원하는 달리기는 다른 것 같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