잣이 제철이다. 잣은 잣나무 열매로 견과류다. 맛도 좋고, 영양은 말할 것도 없으며, 한의학적인 효능이 많고, 더 나아가 영적인 열매이기도 하단다. <아나스타시아>에 따르면 잣나무는 우주의 에너지를 모아둔단다. 그리고 잣 방울을 딸 때, 나무를 때리면 안 된단다. 기름의 약효가 크게 떨어진다고. 잣송이가 다 영글어 스스로 떨어진 걸 주워야한다. 그러니까 나무가 주는 걸 먹어야지, 빼앗듯이 하면 안 된다는 거다.
사실 잣 한 알을 얻으려면 보통 정성이 들어가는 게 아니다. 우선 제철이어야 하고, 잣나무가 잘 자라는 지역이라야 한다. 잣이 익을 무렵 다람쥐와 청설모 역시 부지런히 나무를 옮겨 다니며 잣을 까먹는다.
잣은 솔방울처럼 생긴 잣송이 속에 들어있는데 송이 크기는 주먹만 하다. 잘 자란 송이 하나에는 잣이 100알 남짓 들어있다. 막 떨어진 잣은 송진이 끈끈하게 묻어나온다. 이를 며칠에 걸쳐 가을 햇살에 잘 말려야 한다. 하지만 아무리 잘 말려도 송진을 완전히 없앨 수는 없다. 잣송이를 만질 때는 꼭 목장갑을 끼고 하는 게 좋다. 이제 잣송이를 양손으로 비틀면서 톡톡 치면 속에 든 잣이 잘 나온다.
이제 이 잣을 바로 먹을 수 있는가. 절대 그렇지가 않다. 딱딱한 껍질에 둘러싸여 다시 한번 손이 가야한다. 근데 이 과정이야말로 쉽지가 않다. 대량으로 하는 곳은 기계화가 되어있지만 자급하거나 체험 수준에서는 여의치가 않다.
속 알맹이를 먹자고 망치로 치거나 펜치로 힘을 주면 잣이 까지기보다 으깨어진다. 지금까지 내가 해본 가장 좋은 방법은 플라이어라는 도구를 쓰는 거다. 플라이어도 종류가 많은 데 웬만한 공구상에는 제대로 다 비치해두지를 못한다. 이럴 때 인터넷으로 사는 게 좋다. 잣 까기 좋은 플라이어는 일자보다는 기역자로 굽고, 폭을 다양하게 조절할 수 있는 게 좋다. 내가 산 플라이어는 택배 포함 2만원 남짓.
플라이어 폭을 적당하게 맞춘다. 이 때 폭은 잣을 눕히지 말고 세운 걸 기준으로 하며 잣 알갱이 길이보다 조금 작게 맞춘다. 껍데기가 부스러질 정도까지만. 세워서 까는 게 좋은 이유는 옆보다 위아래가 겉껍질과 속 알맹이와 사이 빈 공간이 더 많기에 덜 으깨어진다. 이렇게 하면 열 알 정도 까면 아홉 알 정도는 으깨지지 않고 깔 수가 있다. 플라이어를 쓸 때 껍질이 부스지면서 사방을 튀게 된다. 이를 막는 방법으로 양파망 속에 작업을 하면 멀리 튀지 않는다. 몇 번만 해보면 한 송이 다 까는 데 10분 남짓이면 된다. 물론 뒷정리까지 말끔히 한다면 30분은 잡아야하지만.
이렇게 깐 알갱이는 향과 맛이 깊고 그윽하다. 잣을 손수 까자면 손이 많이 가지만 그 값을 넉넉히 하고도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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