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급자족/솟아나는 글쓰기

글쓰기가 삶을 풍성하게 하는가?

빛숨 2011. 2. 28. 06:07

나는 이 달에 글을 참 많이도 썼다. ‘어린이 문학’ 관련해서 세 군데 시를 썼고, 사보에는 밥상 원고를 썼다. 나는 종교가 없는데 종교관련 잡지에서 청탁을 해 와, 영성에 관한 글도 썼다. 이 외에 어느 교육 단체에도 글을 하나 써 내야했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글마다 글 값(원고료)도 다르고, 글을 쓰는 정성도 다른 거 같다. 품이 많이 들고 고민을 많이 하고 쓴 글이라고 반드시 값이 높은 건 아니다. 이를테면 사보 원고는 값이 제법 비싸다. 농사꾼 처지에서 본다면 입이 벌어질 정도다. 사보에 따라 다르지만 내가 써본 사보들은 200자 원고지로 장 당 2만원에서 3만 원 가량이나 되었다. 게다가 사보 글쓰기는 그리 어렵지 않다. 일상의 이야기를 수필 형식으로 쓰기만 하면 된다. 다만 어려운 건 사보에 글 쓸 기회가 많지 않다는 거다. 어느 정도 이름 있는 작가라든가 아니면 책을 처음으로 낸, 아주 참신한 글쓰기가 아닌 한 기회가 쉽게 오지 않는다.

 

그 다음 시도 잡지마다 제각각이다. 내가 쓴 세 군데 잡지 가운데 하나는 고료 대신에 쌀로 준단다. 시 두 편에 쌀 10키로. 이걸 돈을 셈하기는 어렵지만 대충 값을 매길 수는 있다. 또 한 군데 잡지는 시 한편 당 만원이다. 시를 열 편 보내달라고 해서 보내주었는데 아마 다섯 편 내외 정도 실릴 거 같다. 마지막 또 한 군데는 아예 고료가 없다. 오히려 다달이 회비를 내야하는 회원제 잡지다.

 

다음 영성 관련 글이다. 일년에 한번 정도는 영성 관련 글을 쓰는 편이다. 나는 종교가 없기에 영성에 대한 이야기를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지도 모른다. 꾸미지 않고, 나를 있는 그대로 드러낸다. 내가 영성을 느끼는 대상은 주로 자연물이거나 아이들이다. 나 자신이 인간으로 잘난 척하다가도 내 둘레서 묵묵히 우리네 목숨이 되어주는 자연을 접할 때면 그 숭고함에 나 자신에 대해 부끄러움을 느끼기도 하며, 그 누구에게도 배울 수 없었던 삶의 영감을 얻기도 한다. 아이들 역시 마찬가지다. 어른으로서 아이들 그 맑은 눈빛을 보는 것만 해도 복 받는 순간이 아닌가.

 

이렇게 다양한 글쓰기를 하면서 새삼 느끼는 거지만 나로서는 시가 가장 어렵다. 등단한 지 이제 갓 일 년 된 햇병아리라 그런가. 시적 순간을 잘 잡아야 하고, 이를 눈에 보여주듯이 드러내야하며, 되도록 운율이 살아있어야 한다. 시 한편 마감하자면 고치고 다듬고를 수십 번도 더 하게 된다. 식구들 의견은 물론 아까운 이웃들 도움말도 들어가며 고치고 다듬기를 반복한다. 때로는 전문가 감수를 받기도 한다. 또한 어린이들 감수도 빼놓을 수가 없다. 그 이유는 아이들이 읽고 이해할 수 없다면 나로서는 시가 아니라고 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시 값은 상대적으로 적다. 여기 상대는 그야말로 상대적이다. 농사꾼한테 쌀 10키로와 시 몇 편을 바꾸자하면 그 누가 흔쾌히 동의를 할까. 또한 시인으로 등단하기를 고대하는 많은 예비 작가들에게는 시 값보다 먼저 잡지에 실리는 일 자체가 값진 경험이 되지 않는가.

 

글쓰기의 핵심은 그 누가 뭐라 해도 삶이다. 삶에서 글이 나오고, 그 글이 다시 삶을 가꿀 때 글다운 글이 된다. 살면서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챙기며. 무엇을 살리고, 무엇을 가꿀 지를 되묻듯이 글도 마찬가지. 글도 자꾸 쓰다 보면 버릴 것은 버리게 되고, 살릴 것은 살리게 된다.

 

내 글쓰기를 자랑하자고 이 글을 쓰는 게 아니다. 회원들끼리 서로 서로 글쓰기를 자극하고 나누고 싶어서다. 하루에 5분에서 10분 정도, 꾸준히 글쓰기를 하다보면 자신도 모르게 뇌가 달라지고, 삶이 달라진다. 남이 쓴 글을 보기 전에 자기 글 먼저 쓰자. 블로그라는 자기만의 공간에 날마다 기록을 하고, 이 가운데 여럿이 나누고 싶은 글을 기꺼이 카페에 올리자. 글쓰기는 분명 삶을 풍성하게 한다. 자신의 글쓰기가 더 나아지고 싶다면 기꺼이 도움을 요청하자. 여기, 따뜻하게 손을 잡아줄 사람은 많지 않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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