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 배추밭에 굼벵이 잡기
가을 농사는 누가 뭐라 해도 무 배추다. 일년 먹을 김장거리가 나오지 않는가. 게다가 올해는 야채 값이 금값이라니 더 애정이 간다.
근데 굼벵이란 놈이 농사꾼들에게는 아주 골치다. 무 배추 뿌리를 끊어먹는다. 주로 밤사이 그런다. 그럼, 낮에 해가 나면 잎이 시들시들하다가 말라 죽고 만다. 그래서인지 생긴 모습도 더 징글징글하게 느껴진다. 이 놈이 갉아먹는 게 무 배추 뿌리만이 아니다. 감자, 돼지감자, 고구마 같은 뿌리 식품도 조금씩이나마 갉아먹어, 볼품없게 만들고, 농작물이 쉽게 썩게 만든다.
이 굼벵이는 유기농 그것도 자연재배나 무경운 재배하는 사람들에게 크게 문제가 된다. 농약을 치는 사람들은 ‘굼벵이 약’이라는 토양 살충제를 뿌려서 해결한다. 유기농 하는 사람들은 일일이 잡아주어야 한다. 유기물이 많은 토양일수록 굼벵이도 많다.
근데 무 배추를 심고 나서 잡자면 늦다. 거름을 넣으면서 한번 잡아주고, 무 배추를 심기 전에 또 한 번 잡아주어야 한다. 심기 전에 흙을 호미로 슬슬 파헤치면 하얀 굼벵이가 보인다. 우리는 스무 평 남짓 무 밭에서 대충 50마리, 열 평쯤 되는 배추밭에 30마리 정도 잡았다. 이렇게 잡고 나도 완전하지 않다. 그 많고 깊은 땅 속을 어찌 다 알랴. 그러니 심고 나서도 하루에 한두 포기씩 시들어 죽는다. 그때마다 굼벵이를 잡으려고 뒤지는데 찾을 때도 있고, 이미 그 자리에서 사라져 놓칠 때도 많다. 앞뒤 사정이 이 정도니 굼벵이를 잡지 않고 무 배추를 심었을 때 그 피해는 상상 이상이다.
그러니 모종을 심을 때 되도록 넉넉히 심는다. 심고 남는 모종은 밭 한 귀퉁이에 넉넉히 심어두었다가 굼벵이가 먹은 자리에 보식을 한다. 나중에 배추가 커지면 중간마다 솎아먹으면 좋다. 무는 씨앗을 넉넉히 심는다. 그리고 무는 이식이 안 되기에 이차로 심을 각오를 하는 게 마음 편하다.
잡은 굼벵이를 어찌 할까. 살이 통통하여 구미가 살짝 당기기는 한다. 아마존 밀림의 어느 부족은 굼벵이를 즐겨 먹기도 한단다. 우리나라에서는 민간약으로 요긴하다. 오죽하면 ‘굼벵이도 약에 쓰려면 없다’는 속담이 있을까. 인터넷에 쳐보면 굼벵이 죽이는 약보다 굼벵이를 먹는 약으로 판매하는 사이트가 훨씬 많을 정도다.
그렇다고 쉽사리 먹게 되질 않는다. 꼭 먹어야 하나? 하는 서글픔도 있고, 굼벵이를 보면 그 속에 시커먼 내장이 그대로 보이니 선뜻 먹기가 어렵다. 그럼, 어찌 할까? 바로 닭 모이로 준다, 닭은 굼벵이를 보면 거의 환장을 한다. 닭마다 한 마리씩 물고 온힘을 다해 구석진 곳으로 달려가 혼자 만 먹으려한다. 사람은 이 놈들이 굼벵이를 먹고 낳은 달걀을 먹는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굼벵이는 반갑지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