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숨 2007. 10. 29. 09:52

 

아침에 잠이 깨어 아내랑 두런두런 이야기 하는 데 탱이가 들어왔다.

“엄마, 그 자세로 더 있을 거예요?”

“왜?”

“응, 그림을 그릴까 하고”

“잠도 덜 깬 모습으로는 싫어”

 

탱이는 요즘 데생에 푹 빠졌다. 느낌이 오면 하루에도 몇 장 씩 그린다. 아이를 실망시키지 않고 싶어 내가 나섰다.

“나라도 좋다면 아버지를 그려라”

 

사실 나는 모델이 한번 되어보고 싶었다. 모델이라면 왠지 근사하지 않는가. 보통 모델이 되자면 얼굴도 잘 생기고, 느낌도 좋아야하는데, 이런 기회가 어디 쉽나? 딸내미 덕에, 부스스한 얼굴에 광대뼈 아저씨가 모델이 된다.

 

눈을 감고 머리 뒤를 깍지 낀 채 가만히 누워있었다. 아이가 연필로 그려나가는 소리만 들린다. 삭삭. 사사삭 사사삭. 소리가 참 좋다. 소리 따라 내 모습이 드러나는가. 어, 그런데 좀 지나자 팔이 저리다. 이럴 때 저리다고 해야 하나, 참아야하나?

 

끙끙대다가 ‘나 편한 게 최고지’ 하며 팔을 내렸다. 그래도 아무 소리 안 한다. 음. 괜찮은 가보군. 다시 한번 더 팔이 불편하다. 그 많은 그림 모델들이 어찌 모델 노릇을 했을까? 새삼 연민의 감정이 인다. 앞으로 인물화를 본다면 화가의 작품 전체보다 모델이 짓는 표정을 먼저 보고 싶다.

 

“지루하지 않으세요?”

“지루하지는 않는데 팔이 저려”

“팔은 움직여도 되요”

 

아이가 그림 그리는 동안에 온갖 상상을 하기에 지루하지는 않다. 스케치 하는 시간이 10분 정도였는데 길게 느껴지기는 한다. 그 이유는 내 모습이 어떨까하는 궁금함 때문에. 그림이 다 되었다고 보여준다.

“좋은데. 너무 젊다. 주름 하나 없잖아?”

“다시 누워보세요”

 

다시 모델이 되고자 누웠다. 처음 위치를 잡고 나자

“누우니까 주름이 한결 적은데요”

“어쨌든 젊게 나오니 좋다. ㅎㅎ”

“연필은 어려워. 다음에는 콩테(conté)로 그려보고 싶어요”

 

모델 노릇, 한 번 더 예약이 되었다. 남들은 모델을 어찌 하나 궁금하다.

 

사진을 올리기 전에 탱이에게 동의를 받는다. 탱이는 자기 그림을 인터넷에 올리는 걸 크게 바라지 않는다. 이번 그림은 내가 모델이니 나 나름 내 희망을 넣을 수 있지 않겠나. 그래서인지 아이가 고개를 끄덕여 좋다는 허락을 해 준다. 모델 노릇 할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