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첫 농사 때가 생각난다. 농사를 짓게 되면 먹고 싶은 걸 실컷 먹으리라고. 상추, 쑥갓, 케일, 얼갈이들을 심었다. 그 가운데 나는 쑥갓을 아주 좋아했다. 처음에는 한 평쯤 쑥갓을 심었다. 어쩐지 이걸로 부족할 듯싶어 조금만 더 심자하고 반 평을 더 심었다. 돈 주고 늘 사먹어야 했던 삶에 대한 한풀이를 하고 싶었나.
심고 나서 얼마 지나자, 보라는 듯이 싹이 돋는다. 하나둘 속아 먹기 시작했다. 상큼하고 아삭한 맛과 독특한 향. 한동안 날마다 먹어도 맛있었다. 점차 날이 더워지고 쑥갓은 커지는데 서서히 먹는 일이 줄었다. 웬만큼 먹었나 보다. 그럴수록 쑥갓은 더 무성하게 자랐다. 그걸 보니 마음이 아팠다.
다 먹지도 못하면서 너무 많이 키웠다고 후회를 했다. 그렇다고 뽑아내고 다른 걸 심을 만큼 일머리도 없었다. 별로 쑥갓이 당기지 않았지만 심고 가꾼 게 아까워 조금 억지로 먹었다. 어쩌면 돈 주고 사먹던 삶에 대한 자기 연민이 더 컸는지도 모른다. 돈이 길바닥에 버려져있는 그런 느낌이라고 할까. 나중에는 쑥갓에 물렸다. 맛은 그만두고 보고 싶지가 않았다.
이듬해는 대폭 줄여 반 평정도 심었다. 이것도 결코 적은 양이 아니었다. 쑥갓이 어릴 때 ,상큼한 맛으로 조금 먹고는 오래도록 돌아보지 않는다. 어쩌다 생선찌개에나 조금 넣을까.
그렇게 해마다 쑥갓 키우는 양을 줄였다. 올해는 아내가 한 스무 포기쯤 심었을까. 이 정도도 우리 네 식구 먹기에 모자람이 없다. 쌈장에도 찍어먹고, 비빔밥에도 넣고, 찌개에도 넣고, 샐러드로도 먹는다. 당기면 한 번씩 먹는다. 맨 윗순을 잘라 먹으면 곁가지에 새순이 또 돋는다. 식구가 웬만큼 먹어서는 한 열 포기만 되도 충분할 듯하다.
먹다가 뜸하게 되면 어느 날인가 쑥갓은 꽃을 피운다. 민들레꽃 비슷하게 생긴 노란 꽃. 이제는 그 꽃을 감상하는 여유를 갖는다. 내 가슴만한 땅덩어리가 이루어내는 기적이다. 땅이란 얼마나 풍요로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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