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 빛 2007. 4. 21. 06:41




 

나는 디지털 카메라 중독이다. 내 가까이 항상 카메라가 있어야 한다. 지금 내가 쓰는 카메라는 일안반사식(Digital Single Lens Reflex)이다. 캐논 Eos 300D. 지난해 봄, 중고로 마련했다. 이 걸로 사진을 찍는 맛은 아주 좋다. 내가 원하는 사진을 찍게 해 준다. 일명 ‘똑딱이’라는 사진기를 쓰다가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된 셈이다.

논밭에서 일하다가 어떤 느낌이 오면 곧장 사진을 찍는다. 곡식 꽃도 벌도 나비도. 처음 본 것들, 새롭게 보이는 것들. 하늘의 구름이 시시각각 달라지는 모습. 눈으로 느꼈던 느낌을 카메라가 되살려준다. 어떤 때는 눈보다 느낌을 더 잘 보여주기도 한다. 무엇보다 접사 사진이 그렇다. 사물을 가까이 보지 못한 것들을 가까이 보게 해 준다. 벼 잎에 거미줄을 친 긴호랑거미라든가 벼꽃이 피어나는 순간들.

조리개를 열고 닫을 수 있기에 사진 배경을 살리기도 하고 없애기도 한다. 찍고자 하는 대상이 때로는 돋보이게 때로는 둘레와 조화롭게 자신을 드러낸다. 가끔은 셔터 스피드를 이용해 움직이는 물체를 잡기도 한다. 처마에서 떨어지는 빗방울이라든가 밤 풍경도 제법 잘 찍을 수 있다.

사진을 찍으면 우선 컴퓨터에 저장을 한다. 그리고 식구들이 글을 쓰는 잡지에 필요한 사진을 보낸다. 이 카메라를 마련하고 잡지에 실린 사진이 많으니 사진기 값을 벌고도 남았다. 물론 홈페이지에도 사진을 자주 올린다. 가장 일상으로 찍는 건 요리 사진이다. 날마다 요리 일기를 쓰고 이를 사진으로 찍는다.

자신을 표현하는 데는 여러 가지 길이 있다. 글, 사진, 그림, 음악…….한 장의 사진은 글로 나타내기 어려운 많은 부분을 드러내준다. 사진 한 장에 든 내용을 글로써 자세히 풀어내자면 책 한 권으로도 부족할 때가 있다. 하지만 사진은 말없이 뜻을 전한다. 보는 사람에 따라 느낌도 다양하다.

나 자신이 아직까지 사진 찍는 기술은 절대 부족하다. 용어도 대부분 낯설고 어렵다. 시간이 나면 책을 보고 사진 조작을 연습하지만 익숙하게 쓰는 건 여전히 어렵다. 그렇지만 큰 불편은 느끼지 못한다. 그냥 내 수준에서 보고 느끼는 것들을 그냥 찍는 걸로 만족한다.

나는 사진 전문가는 아니지만 느낌에 대해서는 분명한 생각이 있다. 사진은 찍는 사람이 느낌을 갖고 찍어야 그 느낌이 사진에서도 고스란히 담긴다고 믿는다. 사실 중고 일안반사식을 쓰면서 더 좋은 카메라와 렌즈에 대한 유혹을 자주 받는다. 바디 값과 렌즈 값이 비싼 것들도 아주 많다. 이런 사진기로 찍은 사진이 참 좋기는 하다. 그러나  이 보다는 삶이 주는 감동이 먼저가 아닐까 싶다. 나처럼 중고 사진기로 찍었지만 공감이 잘 되는 사진도 많다.

지금 내가 쓰는 이 사진기는 내 분신에 가깝다. 논밭에 일하러 가면서도 한 손에는 낫이라면 또 한 손에는 카메라를 든다. 호미를 들 때도 괭이를 가지고 갈 때도 카메라는 따라 간다. 여행을 가더라도 호미는 안 가져가지만 카메라는 가져간다. 명절날도 물론 그렇다. 누구네 돌잔치나 집들이라면 더 챙기는 게 카메라다. 어쩌면 밥 먹는 것 이상으로 카메라는 내게 가깝다.

그런데 이 카메라가 얼마 전에 고장이 났다. 스위치를 반누름 한 상태에서 초점을 잡은 다음 구도를 옮겨 찍는 데 이게 안 된다. 반누름 기능이 사라져버렸다. 전화로 상담을 하니 스위치 고장이란다. 앞이 캄캄하다. 수리를 보내자니 하루를 견디기가 어려울 듯 했다. 자동 초점이 안 되니 한동안 수동 초점으로 찍었다. 너무 불편했다. 내가 카메라에 얼마나 중독이 되었는지 점점 실감을 하게 된다.

그러다가 이 참에 내 중독 증세를 진단(?)하기 위해 결단을 내렸다. 수리를 맡겼다. 길어야 나흘이다. 2만 3천원 수리비에 받아본 카메라는 수리가 제대로 안 되었다. 아예 전원 자체가 들어오지 않는다. 막말로 ‘뚜껑’이 열리는 기분이다. 안절부절. 카메라가 수리되어 도착하는 그 다음날, 경주 여행을 떠나기로 한 것도 한 가지 이유이다. 여행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내가 가족 여행을 떠날 수 있는 힘은 카메라에 있다. 이제는 뭔가 새로운 것들을 만나면 사진을 찍으리라는 믿음마저 날아갔다.

덕분에 마음공부를 많이 했다. 순간을 기계에 담아두기보다는 내 눈에, 내 마음에 담아두자. 지나간 순간들에 미련을 크게 갖지 말자. 또 다른 순간들이 우리 앞에 오지 않겠나. 이런 식으로 나를 달래지만 마음뿐이다. 손이 허전하고 눈이 아리다. 그래도 어쩔 거냐. 기분대로 하자면 있는 없는 돈 탈탈 털어서 중고카메라를 하나 더 마련하고 싶지만 참고 참았다.  

다시 수리를 보냈다. 카메라가 돌아오자 얼른 꺼내 찍었다. 이제 된다. 그 감격에 그냥 몇 장을 눌렀다. 살 거 같다. 나를 살리는 카메라! 너 없이는 살기 어렵겠다.



  정다운 예전 기억이 나네요.

인도여행 두달을 다니면서 분신처럼 가지고다녔던 Nikon FM2 라는 수동카메라가 있었습니다.

여행이 50일을 넘겨갈 무렵 버스에서 카메라를 도둑맞았지요. 카메라 렌즈캡만 남기고 가져가버렸지요.

50일 동안 수십롤의 필름을 찍었지요.
하지만 나머지 10일간 훨씬
여유있게 걷고 있는 제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뭔가를 사진으로 남긴다는 것도 욕심인가 봅니다.

좋은 공부 하셨네요^^; 수업료는 2만 3천원 ㅎㅎ
2006/09/27  
  김종삼 "사진은 찍는 사람이 느낌을 갖고 찍어야 그 느낌이 사진에서도 고스란히 담긴다고 믿는다" 는 표현... 참 좋습니다^^ 2006/10/02  
  김광화 사진을 찍다보니
사물을 좀더 애정을 갖고 보게 되나봐요.
그러다 보니 느낌도 더 살아나고...
이것도 중독은 중독이지요?^^
2006/10/04  
  김종삼 착상과 그것에 대한 표현... 예술이 따로 있겠나 싶네요 올리신 글 중 저 문구를 읽을 때 "모든 사람은 다 예술가다"라고 말한 요셉보이스의 말이 떠올랐고 그 말에 대한 실감도 났었구요 2006/10/04  
  오수연 저도 요번에 부모님께 허락맡아서....통장에있는돈 빼서 하나 장만했는데---아무래 도 불안하네용..금방이라도 고장날듯..-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