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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디지털 카메라 중독이다. 내 가까이 항상 카메라가 있어야 한다. 지금 내가 쓰는 카메라는 일안반사식(Digital Single Lens Reflex)이다. 캐논 Eos 300D. 지난해 봄, 중고로 마련했다. 이 걸로 사진을 찍는 맛은 아주 좋다. 내가 원하는 사진을 찍게 해 준다. 일명 ‘똑딱이’라는 사진기를 쓰다가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된 셈이다.
논밭에서 일하다가 어떤 느낌이 오면 곧장 사진을 찍는다. 곡식 꽃도 벌도 나비도. 처음 본 것들, 새롭게 보이는 것들. 하늘의 구름이 시시각각 달라지는 모습. 눈으로 느꼈던 느낌을 카메라가 되살려준다. 어떤 때는 눈보다 느낌을 더 잘 보여주기도 한다. 무엇보다 접사 사진이 그렇다. 사물을 가까이 보지 못한 것들을 가까이 보게 해 준다. 벼 잎에 거미줄을 친 긴호랑거미라든가 벼꽃이 피어나는 순간들.
조리개를 열고 닫을 수 있기에 사진 배경을 살리기도 하고 없애기도 한다. 찍고자 하는 대상이 때로는 돋보이게 때로는 둘레와 조화롭게 자신을 드러낸다. 가끔은 셔터 스피드를 이용해 움직이는 물체를 잡기도 한다. 처마에서 떨어지는 빗방울이라든가 밤 풍경도 제법 잘 찍을 수 있다.
사진을 찍으면 우선 컴퓨터에 저장을 한다. 그리고 식구들이 글을 쓰는 잡지에 필요한 사진을 보낸다. 이 카메라를 마련하고 잡지에 실린 사진이 많으니 사진기 값을 벌고도 남았다. 물론 홈페이지에도 사진을 자주 올린다. 가장 일상으로 찍는 건 요리 사진이다. 날마다 요리 일기를 쓰고 이를 사진으로 찍는다.
자신을 표현하는 데는 여러 가지 길이 있다. 글, 사진, 그림, 음악…….한 장의 사진은 글로 나타내기 어려운 많은 부분을 드러내준다. 사진 한 장에 든 내용을 글로써 자세히 풀어내자면 책 한 권으로도 부족할 때가 있다. 하지만 사진은 말없이 뜻을 전한다. 보는 사람에 따라 느낌도 다양하다.
나 자신이 아직까지 사진 찍는 기술은 절대 부족하다. 용어도 대부분 낯설고 어렵다. 시간이 나면 책을 보고 사진 조작을 연습하지만 익숙하게 쓰는 건 여전히 어렵다. 그렇지만 큰 불편은 느끼지 못한다. 그냥 내 수준에서 보고 느끼는 것들을 그냥 찍는 걸로 만족한다.
나는 사진 전문가는 아니지만 느낌에 대해서는 분명한 생각이 있다. 사진은 찍는 사람이 느낌을 갖고 찍어야 그 느낌이 사진에서도 고스란히 담긴다고 믿는다. 사실 중고 일안반사식을 쓰면서 더 좋은 카메라와 렌즈에 대한 유혹을 자주 받는다. 바디 값과 렌즈 값이 비싼 것들도 아주 많다. 이런 사진기로 찍은 사진이 참 좋기는 하다. 그러나 이 보다는 삶이 주는 감동이 먼저가 아닐까 싶다. 나처럼 중고 사진기로 찍었지만 공감이 잘 되는 사진도 많다.
지금 내가 쓰는 이 사진기는 내 분신에 가깝다. 논밭에 일하러 가면서도 한 손에는 낫이라면 또 한 손에는 카메라를 든다. 호미를 들 때도 괭이를 가지고 갈 때도 카메라는 따라 간다. 여행을 가더라도 호미는 안 가져가지만 카메라는 가져간다. 명절날도 물론 그렇다. 누구네 돌잔치나 집들이라면 더 챙기는 게 카메라다. 어쩌면 밥 먹는 것 이상으로 카메라는 내게 가깝다.
그런데 이 카메라가 얼마 전에 고장이 났다. 스위치를 반누름 한 상태에서 초점을 잡은 다음 구도를 옮겨 찍는 데 이게 안 된다. 반누름 기능이 사라져버렸다. 전화로 상담을 하니 스위치 고장이란다. 앞이 캄캄하다. 수리를 보내자니 하루를 견디기가 어려울 듯 했다. 자동 초점이 안 되니 한동안 수동 초점으로 찍었다. 너무 불편했다. 내가 카메라에 얼마나 중독이 되었는지 점점 실감을 하게 된다.
그러다가 이 참에 내 중독 증세를 진단(?)하기 위해 결단을 내렸다. 수리를 맡겼다. 길어야 나흘이다. 2만 3천원 수리비에 받아본 카메라는 수리가 제대로 안 되었다. 아예 전원 자체가 들어오지 않는다. 막말로 ‘뚜껑’이 열리는 기분이다. 안절부절. 카메라가 수리되어 도착하는 그 다음날, 경주 여행을 떠나기로 한 것도 한 가지 이유이다. 여행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내가 가족 여행을 떠날 수 있는 힘은 카메라에 있다. 이제는 뭔가 새로운 것들을 만나면 사진을 찍으리라는 믿음마저 날아갔다.
덕분에 마음공부를 많이 했다. 순간을 기계에 담아두기보다는 내 눈에, 내 마음에 담아두자. 지나간 순간들에 미련을 크게 갖지 말자. 또 다른 순간들이 우리 앞에 오지 않겠나. 이런 식으로 나를 달래지만 마음뿐이다. 손이 허전하고 눈이 아리다. 그래도 어쩔 거냐. 기분대로 하자면 있는 없는 돈 탈탈 털어서 중고카메라를 하나 더 마련하고 싶지만 참고 참았다.
다시 수리를 보냈다. 카메라가 돌아오자 얼른 꺼내 찍었다. 이제 된다. 그 감격에 그냥 몇 장을 눌렀다. 살 거 같다. 나를 살리는 카메라! 너 없이는 살기 어렵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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