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이야기/농사와 사는 이야기

살림의 순간-씨앗 고르기

모두 빛 2016. 3. 4. 06:11



볕 좋은 날, 아내와 함께 씨앗을 만진다.
설레는 순간. 씨앗 한 알 속에 우주가 들어 있다고 하지 않는가. 씨앗 한 알이 자라 어떤 모습으로 뻗어갈지 아무도 모른다.
고추씨, 오이씨, 콩씨, 옥수수씨. 다 잘 있는가?
이 땅에서 수십 년, 수백 년을 이어온 씨앗을 건네받아 우리가 다시 기르는 씨앗들.
토종씨앗은 수확량이 개량종보다 떨어진다지만 좋은 점도 적지 않다. 우리 땅, 우리 환경에 적응했기에 어설프게 농사지어도 씨앗이 가진 힘이 좋아, 먹을 만큼 거두는 게 어렵지 않다.
토종 오이는 맛도 좋지만 서리 올 때까지 오래도록 열린다. 씨앗이 필요한 이들과 기꺼이 나눌 수 있다는 것도 좋다.
하지만 손이 많이 간다. 씨앗으로 쓸 것들을 잘 거두어야 하고, 잘 보관해야 하며, 잘 골라야 한다.

씨고추를 받으려면 10월 초까지 고추는 물론 밭 자체를 건강하게 유지해야 한다.
잘 영근 고추 가운데 다시 고르고 골라서 처마에 오래 말려 두었던 씨고추. 그 껍질을 벗겨 내면 씨자리에 씨앗 백여 개가 올망졸망 붙어 있다.
황금빛 씨앗 하나하나 황홀하지만 다 씨가 되기는 어렵다. 물에 담가 가라앉는 것만 쓴다.
씨앗을 만진다. 우주를 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