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비, 돌아오다
이번 추석에 아주 반가운 손님을 봤다. 바로 제비다.
내 어린 시절에는 제비가 정말 많았다. 겨울을 따뜻한 남쪽에서 나고 따스한 봄이 오면 제비들이 돌아왔다. 집집이 처마에다가 집을 짓고 알을 낳고 새끼들을 길러냈다.
제비가 새끼를 까, 왕성하게 먹이활동을 할 무렵에 들판에는 벼가 꽃이 피고 수정을 하여 이삭이 고개를 숙이기 시작한다.
벼가 익기 시작하면 덩달아 논에는 벌레도 많기 마련. 메뚜기를 비롯하여 멸구, 나방 들이 벼잎이나 줄기 그리고 낟알을 먹기 위해 모여든다.
그러니 제비에게 논은 생명창고나 다름없다. 사람에게 제비는 그 어떤 날짐승보다 소중하고 고마운 존재다. 참새, 비둘기, 꿩들은 벼 알곡을 무척 좋아한다. 이런 새들이 논에 나타난 것은 벌레를 먹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직 알곡을 먹기 위해서다.
근데 제비는 전혀 다르다. 논에 자라는 벼 위를 스치듯 날면서 엄청난 속도와 날개 놀림으로 벌레를 야금야금 먹어치우고, 이 벌레를 물어다가 새끼를 키운다. 이렇게 한 30분 남짓 먹이활동을 하고 나면 전깃줄이나 빨래줄 같은 곳에 내려 앉아 먹은 벌레가 소화되길 기다린다. 소화가 웬만큼 되면 다시 수천 수 만 마리 제비가 논 위를 빠르게 날면서 먹이를 잡아먹는다.
이렇게 사람에게 소중하니 사람 역시 제비를 소중하게 여긴다. 제비도 이를 알고 제비집을 사람 사는 집 처마에 짓는다. 이렇게 함으로써 혹시나 있을지 모를 뱀이나 매 공격으로부터 보호를 받는 셈이다.
돌아보면 이렇게 사람에게 소중하고 고맙던 제비가 서서히 사라졌다. 그 주된 이유는 농약과 제초제 때문. 60~70년대를 기점으로 화학농법이 크게 발달을 한다. 다수확을 위해 비료를 뿌리고, 병과 벌레를 이겨내라고 독한 농약을 치며, 풀을 죽이기 위해 제초제를 뿌려댔다. 그러니 논에는 벌레가 드물었고, 제비 역시 약 중독으로 죽거나 살아난 놈들은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그러더니 이제 제비가 다시 나타났다. 몇 십 년 만인가. 아마도 30년은 넘은 거 같다. 그렇다면 다시 돌아온 이유가 뭘까. 내가 볼 때는 다시 농약이다.
이제 벼농사에는 약을 거의 치지 않는다. 그 이유를 보자. 이제 농업 가운데 벼농사는 돈벌이에서 멀어진 작목에 들어간다. 오늘날 농업의 주된 흐름은 상업화다. 돈 되는 농사를 짓는다. 벼농사로 돈을 하기에는 국제적인 여건이 너무 좋지를 않다. 이제 벼농사는 돈벌이보다는 그동안 지어오던 농사니까. 또는 식구들 먹을 양식이라는 개념에서 짓는 정도다. 점차 영농 규모가 줄어들어 이제는 벼농사가 나라 차원에서 자급이 되지 않는다. 한 사람당 쌀 소비량은 30년 전보다 아주 많이 줄었지만 쌀을 수입해야하는 처지가 된 셈이다.
이렇게 돈도 안 되는 농사에 다시 돈을 들여 농약을 뿌릴 이유가 적어진 거다. 우리 어머니네 동네는 들이 넓지만 대부분 배농사로 돈을 한다. 이 곳 무주는 고추농사나 천마 같은 특작으로 돈을 번다. 그러니 벼농사에는 자연히 약을 안친다. 모내기 한 뒤 제초제 한번 치는 정도다.
이제 논은 생명의 보고를 다시 찾은 셈이다. 약으로 벌레를 잡는 게 아니라 자연이 갖는 먹이사슬에 따라 제비들이 벌레를 잡아주는 거다.
그렇다면 왜 내 고향 상주에는 제비가 많이 돌아왔는데 이 곳은 아직 보이지 조차 않는다. 아마도 상주는 들판이 넓어서가 아닐까 싶다. 제비들은 빠른 속도로 논 위를 날면서 먹이를 잡는다. 상주 들판은 산골에 견주면 엄청나게 넓다. 제비들이 빠른 속도로 낮게 나는 게 가능하다.
하지만 우리 사는 곳은 논 한 다랑이 넓이가 100미터 되는 곳이 드물다. 심지어 내가 농사짓는 산골 다랑이 논은 폭이 10미터도 채 되지 않는다. 여기에 견주어 논두렁은 엄청 높다. 제비들이 먼저 찾아와, 먹이활동을 하기에 여건이 그리 좋지 않다. 제비 개체수가 크게 늘어난다면 언제가 이 산골까지 제비가 날아올지는 모르겠다.
올 추석에 너른 들판에서 제비가 나는 모습을 오랫동안 바라보는 시간이 참 즐거웠다. 자연에 사람이 살지 않는다면 제 스스로를 복원하겠지만 그건 그리 바람직한 모습은 아니리라. 그런 점에서 제비는 사람과 자연을 연결하는 아주 소중한 존재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