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이야기/몸 공부, 마음 이야기

짧았지만 벅찬 결혼 기념 여행

모두 빛 2014. 8. 29. 08:19

우리 부부는 겨울에 결혼을 했다. 그러다보니 이를 기념하는 게 쉽지가 않다. 너무 추우면 웅크리게 되고, 눈이라도 많이 오는 날은 꼼짝없이 갇히게 된다.

 

아내가 어느 날 그런다. 굳이 그럴 필요가 있나. 우리 형편에 맞게 하잖다. 농사일이 바쁘지 않고 날씨도 적당한 날을 골라 그때그때 편하게 가자고.

 

이번에 마침 이를 실천할 계기가 자연스레 생겼다. 아내가 춘천쪽 강의 일정이 잡힌 걸 계기로 이런저런 계획을 구체화했다. 이 곳에서 춘천을 한번 가는 게 어디 보통일인가. 멀고도 멀더라. 가고 오는 길에 기름을 두 번이나 넣을 정도니. 하지만 어찌 보면 보통 때 쉽게 나서게 되지 않는 길이야말로 여행의 의미가 있는 것이기도 하니까 이 참에 둘러보자고.

 

여행 시작은 먹는 데서부터. 춘천하면 막국수. 여기저기 알아보고 간 ** 막국수. 막상 먹어보니 실망이다. 음식이 우리 입맛에는 달다. 육수를 더 달라고 해서 단맛을 없애느라고 애를 먹었다. 추가로 주문한 메밀 전병은 그런 대로 먹을 만 했다.

 

아내가 강의를 하는 동안 나는 도서실에 들러 농업 관련 책과 자료를 보았다. 시간이 넉넉하여 충분히 살피고 필요한 것들은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어 저장했다.

 

강의 끝나자마자 소양호에서 배를 타고 청평사를 가기로 했다. 근데 일정이 너무 빠듯했다. 5시 배를 타게 되었고, 청평사까지 올라가는 과정은 불가능했다. 배에서 내려 들머리까지 산책. 길 중간에 돌탑 쌓은 곳이 보여 우리부부도 결혼기념 탑을 쌓았다. 들머리에는 이런저런 음식점이 있어 시간은 빠듯했지만 목이 말라 막걸리 딱 한잔만 하자했다.

 

가계 주인이 시간이 급하지 않으니 천천히 먹고 가도 된단다. 하지만 낯선 곳이고 마지막 배를 놓칠까 걱정이 되어 김치조차 없이 막걸리 한 잔을 따라 마셨다. 이렇게 맛난 술은 아마도 처음인 듯. 목은 탔고, 둘레는 숲과 물이 어울러져 맛이 더 좋았나 보다.

 

가계 주인이 바쁜 중에도 김치도 내 주고, 한 잔을 먹는 동안 메밀 전도 작게 부쳐주었다. 고마움에 돈을 추가로 드리려고 했더니 한사코 안 받으신다. 다음에는 느긋하게 와서 제대로 먹고 산장에서 하루쯤 자면 더 좋겠다 싶다. 아쉬움을 뒤로 하고 마지막 배를 타고 소양호를 빠져나왔다.

 

숙소로 들어가기 전, 저녁으로 민물 매운탕을 먹기로 했다. 소양호 배를 모는 분들이 소개해준 집으로 갔다. 매운탕은 돈이 조금 비싸 그렇지 제법 먹을 만했다.

 

예약한 숙소로 이동하니 벌써 밤이다. 비수기라 아주 싸게 예약을 했다. 시설이 가격에 견주어 참 좋았다. 둘레도 조용하고. 나는 여행 중에는 잠을 깊이 잘 자지 못하는 데 이 곳에서는 깊게 잤다. 그 고마움에 적지만 팁을 조금 놓고 방을 나왔다. 그리고 이 숙소는 물레길 카누와 연계된 상품이라 카누 타는 비용도 할인이 되었다.

 

사실 나는 이번 여행에서 가장 마음에 둔 게 바로 물레길에서 카누타기다. 아내와 연애시절 한번쯤 같이 타 보고 싶었는데 이런저런 이유로 기회를 갖지 못했다. 연인끼리 함께 타는 모습을 보기만 해도 좋은데 둘이서 노를 저어 어디론가 물살을 가르며 나간다는 건 많은 걸 상징하지 않나. 서로 호흡을 맞추며, 힘을 조절하고, 물 흐름과 바람을 느끼면서, 멀리도 보면서 방향을 잡고 팔과 허리 그리고 배 힘을 적절히 이용하여 미끄러지듯 나가는 카누.

 

카누 타기를 처음 계획할 때만해도 아내는 시큰둥했다. 내가 원하니까 같이 타준다 정도. 나도 걱정이 되긴 했다. 체력이나 기술이 제대로 받쳐줄까. 집에서 미리 팔굽혀펴기랑 가벼운 조깅으로 미리 몸을 풀기는 했지만 긴장되었던 건 사실이다.

 

카누를 타기 전 강사분의 강의를 듣고 막상 타니 그리 어렵지가 않았다. 물살 따라 내려가는 과정이기도 하고. 하지만 배를 유턴하듯 방향 전환하는 건 쉽지 않아 도움을 받았다. 배를 유턴한 다음부터는 완전히 적응을 했다. 아내가 가만히 있고 나 혼자서도 물살을 거슬러 저을 수 있었다. 아내도 무척 재미있어 했다. 내가 너무 빨리 젖는다고 성화를 할 정도로. 천천히 여유를 즐기자고. 카누를 좀 더 오래 타고 싶다고.

 

처음에는 두 사람이 같은 방향을 보고 카누를 저었다. 익숙해지자. 자세를 바꾸고 싶었다. 부부가 서로 마주 보며 젖자고. 안전 요원의 도움을 받아 아내가 배에서 돌아앉았다. 그 다음부터 우리는 서로 마주 보고 노를 저었다. 천천히. 천천히. 그렇게 천천히 한다 해도 어느 새 선착장에 도착했다. 한 시간이 후딱 흘러 아쉽게 배에서 내렸다. 다음에는 두 시간 짜리 고급코스를 타보고 싶다.

 

강 둘레 물레길은 워낙 완만하여 산책하고 자전거 타게 잘 정비가 되어있어 그 둘레를 천천히 이야기를 나누며 산책을 했다. 배가 고파 이제 식당으로. 이번에는 고속도로 입구 가는 길에 보이는 다슬기국 집으로 갔다. 그런 대로 먹을 만했다.

 

여기서 계획 급 변경. 원래는 수목원을 둘러보기로 했는데 그냥 무주로 돌아가기로 했다. 마침 김용택 시인이 무주에서 인문학 강의를 한다는 소식을 듣고 그리로 가기로 한 거다. 멀고 먼 길을 달려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바로 강의장으로 갔다.

 

요즘 가끔 인문학 강의를 듣기는 하지만 그리 썩 마음에 와 닿는 강의가 드물었다. 거기 견주어 김용택 강의는 나름 유익했다. 강사 어머님이 병원에서 입원한 상태에서 수를 놓고 마음속에 맺힌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내게 한 시인과 부인의 아이디어는 음미할만한 했다. 누구나 나이를 잊고 살 수 있음을 잘 보여주는 보기라 하겠다.

 

이렇게 일박 이일 여행이었지만 벅찬 시간이었다. 함께 해준 아내가 새삼 고맙고 소중하다. 나이에 상관없이 앞으로도 더 많은 체험이 가능하리라는 영감을 많은 사람들과도 나누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