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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머니 공동체

빛숨 2013. 4. 16. 13:18

노후의 자급자족--할머니공동체

친지와 전화를 주고받다가 또다시 할머니공동체 이야기가 나왔다. 그러고 보니 할머니 공동체를 노래 부르면서도 정작 한번도 생각을 정리해 여기 올린 적이 없었구나. 우수에 눈이 오니 오늘이 해 보자.

얼마전 한겨레 김선주 칼럼에서
“나이가 들면 입은 닫고 지갑은 열라”
는 글을 본 적이 있다. 정말 공감가고 또 실천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아직은 그 정도로 나이가 들지 않았으니 쪼금은 입도 놀리면서.....

위의 말씀을 실천할 때를 나는 예순다섯으로 잡고 있다. 그때가 되면 그나마 드문드문하는 사회활동을 다 접고 할머니 공동체--노인공동체를 하려고 한다. 물론 그 전에도 틈틈이 준비를 해야겠지.

할머니 공동체를 생각하게 된 건, 도시 사는 우리 부모님의 노후를 보면서다. 우리 부모님은 건강한 편이라 팔십이 넘게 사셨다. 한데 곁에서 지켜보니 앞자리가 예순일 때와 일흔일 때, 여든일 때가 다르더라. 예순은 아직 팔팔해 자기 영역에서는 웬만한 젊은이들보다 나을 수도 있는 나이. 일흔이 되면 일선에서 물러나 손주를 길러준다든가, 일생을 마무리한다든가 하는 나이, 여든이 넘으면 그때부터는 누군가의 돌봄이 없으면 스스로 살아가기 힘든 나이.
이 연세의 부모를 모시는 자식들은 그 뒷바라지로 자신의 에너지를 써야 한다. 여기저기 아프니 병원 모시고 가야지. 사회관계가 점점 닫히니 자주 들러 함께 놀아줘야 하는데 그런다고 또 노인들이 자식 말을 잘 듣냐? 아니다. 점점 자기 안에 갇히고 사고가 굳어져가 자기 하고픈 대로만 한다. 두려움이 많아지니 더욱더 자식들한테 매달리고 자식들을 좌지우지하고 싶어 한다. 여기에 휘둘리는 일도 한두 해지 몇 년이 거듭되면 진저리를 친다.
어린 손주 돌보는 일하고 연로한 노인 모시는 거하고 달라서 어린아이는 희망을 기르는 일이지만, 노인 모시는 일은 힘 빠지는 일이더라. 그나마 우리 부모님은 자기 노후에 필요한 경비를 마련해 놓으셔 셔 자식들이 돈 문제로 골머리를 앓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거기 견주면 시골 사시는 우리 시어머니 노후는 참 건강하다. 혼자 사시니 외롭긴 하지만, 시골이라 늘 일거리가 있다. 또 요즘 같은 겨울에는 아침에 일어나면 마을회관으로 출근하신다. 거기서 다른 할머니들하고 이야기도 나누고 텔레비전도 보고 함께 밥 해 먹고. 이렇게 따뜻한 회관에서 하루를 보내시고 저녁에 잘 때야 집으로 돌아오신다. 여럿이 어울려 지내니 누구 생신이라고 밥 먹을 일 생기고, 세상 돌아가는 일도 귀동냥으로 들으셔서 어느 정도 세상을 따라가신다.
마을 공동체라는 게 이런 거구나 싶다. 개개인의 생활은 생활대로 하고, 서로 외로운 만큼 서로 의지하면서 사는 공동체. 이런 공동체가 노후에 있다면 내 노후를 자급할 수 있지 않을까? 노인들끼리 서로서로 돕고, 돌봐주고 함께 놀고.

여기서 확 이야기를 더 들어가 보자. 이 공동체의 중심이 누군가? 할머니들이다. 할머니들이 중심이니 밥도 함께 해 먹고 어찌되었든 서로서로 의지하며 살지, 할아버지들이 중심이라면 벌써 깨져도 깨졌으리라. 여성은 소통에 관심이 많고 서로 힘든 걸 나누면서 소통하는 존재다. 그래서 노인공동체는 할머니공동체가 자연스레 될 뿐 아니라, 할머니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혹시 할아버지가 되어서도 할머니를 자기 울타리에 가두고 자기 뒷바라지나 하는 존재로 생각하는 분 계신가? 그렇다면 간단하다. 할아버지 중심의 공동체를 만들기를 바란다. 유토피아 같은 할아버지 공동체를 만들어 거기에 아내를 초대하면 되리라. 뭐 그럼 할머니공동체도 관심을 가지고 가끔 교류하면 재미있겠다.

내가 생각하는 할머니 공동체는 연립주택이다. 시골에 원룸을 연립주택처럼 줄지어 짓는 거다. 시골에 단독주택은 난방도 유지관리도 쉽지 않으니 서로서로 등을 기대 연립주택을 짓되, 그래도 여기가 시골이니만큼 1층 연립으로 짓고 자기 원룸 앞마당은 자기 텃밭으로 가꾸게 설계를 한다. 그 원룸에는 부엌, 욕실 이런 시설이 다 갖추어져 있고 할머니 혼자서도 살고 부부가 함께 살기도 하고. 2층에는 마을회관처럼 공동공간을 만드는데, 공동체 구성원의 뜻에 따라 공동작업장을 만들 수도 있겠다. 공동공간에는 큰 부엌도 넣어 밥도 해 먹고, 자식들이 놀러와 자고 갈 수 있는 게스트하우스도 넣고, 공동체마다 특색 있는 작업공간도 넣을 수 있겠지.
형편이 좋은 사람은 조합형식으로 출자를 해서 이 연립주택을 짓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지자체와 협의해 이런 공간을 임대해서 살면 되리라. 앞에 내가 전화를 한 지인은 제주도 분이었는데, 이런 주거공동체가 전국에 있다면 서로서로 바꿔서 살아도 좋으리라. 한두 달씩, 일이년씩.
이렇게 하면 지자체는 인구유입의 효과가 있고, 노인복지관리도 쉽다. 지금 시골에 구석구석 혼자 사는 할머니들을 위해 지자체가 경비를 쓰는 걸 읍내 가까운 한적한 마을에 이런 주거공동체가 몇 군데(걸어 다닐 수 있는 거리에) 있다면 서로 좋지 않겠나.

내가 이 할머니 공동체에 관해 이야기를 하면 어떤 이는 고개를 절래절래 흔든다. 젊은 사람도 공동체 하기가 얼마나 힘든데 나이든 고집불통 노인네들이 공동체를 한다고? 그렇긴 그렇겠다. 핵가족, 개인주의 사회에 길든 우리가 모여서 살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그것도 점점 뻣뻣해지고 두려움이 많아지는 노인네들이. 하지만 한번 해 보고 싶다. 투닥투닥 하더라도. 어차피 삶이란 게 투닥거리는 거니까. 사람들이 좀 꼴 보기 싫으면 원룸에서 꼼짝 않고 지내지 뭐. 그러다 또 누군가가 그리우면 공동공간으로 나아가고.
이렇게 투닥거리느라 자식 네들한테 관심을 덜 쏟게 되고, 서로가 자립해서 살아갈 수 있다면 내 노후를 여기에 퐁당 빠뜨려도 괜찮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