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이야기/아이들은 자연이다

[스크랩] 또 한번, 멀고도 긴 서울 나들이

모두 빛 2012. 1. 20. 07:43

오랜 만에 서울을 다녀왔다. 멀고도 긴 나들이. 내가 몸담고 있는 대안교육연대(이하 연대) 워크숍에 참석하느라고.

 

지난 한해 나는 연대 운영위원으로 일했다. 내 몫은 연대 여러 운영위원(정책, 진로, 학부모, 초등, 중등....) 가운데 홈스쿨러. 사실 내 기준에서 돌아보자면 제대로 일을 하지 못했다. 그 이유는 내가 연대를 잘 모르는 것도 있고, 연대 일이 주로 대안학교 중심으로 흐르기 때문이기도 하다.

 

고민 끝에 지난 활동을 정리하고 올 해는 운영위원을 맡지 않을 생각이었다. 근데 이치열 국장, 이영이 위원장.. 이런 양반들이 내게 보내주는 정 때문에. 나는 정에 약하다. 사실 내가 그리 역량이 있는 줄은 모르겠다. 근데도 나를 예뻐하고 또 존중해주니 싫지는 않다.

 

그 힘으로 일단 이번 워크숍만은 참석하기로 했다. 1월 워크숍은 연대에서 아주 중요한 자리다. 지난 한 해를 돌아보고, 올 한 해 일을 어떻게 할까를 결정하는 자리이기 때문. 그만두는 운영위원도 있고, 새로이 참여하는 운영위원도 있다.

 

이 곳 산골에서 서울까지 가는 길이 얼마나 먼가. 게다가 워크숍은 두세 시간으로 끝나는 게 아니다. 아침 9시 반에서 밤 12시까지다. 멀고도 길수밖에 없는 나들이.

 

집에서 아침 9시 반까지 워크숍 장소인 서울 ‘꽃피는 학사’까지 가려면? 집에서 새벽 6시에는 나서야한다. 잠을 늦어도 4시쯤에는 깨어야한다. 밥을 해서 주먹밥을 싸려니까. 근데 막상 잠에서 깨어나니 새벽 3시다. 긴장을 해서인지 생각보다 일찍 깬 셈이다.

 

다시 잠들기는 글렀고, 글 한 편 쓰는데 아내가 일어나 밥을 한다. 근데 이 시간에 밥이 먹힐 리 있나. 그렇다고 서울에서 믿고 사먹을 곳이 그리 많지도 않다. 주먹밥은 더없이 좋은 나들이 도시락.

 

근데 출발하려니 생각지도 않게 눈발이 내리는 거다. 햇살이 잘 드는 길바닥에는 눈이 녹고, 응달진 곳은 눈이 살짝 깔려 있는 상태. 스노체인을 챙겨 차를 몰고 금산에서 사는 정해원 운영위원을 만나려 출발.

 

새벽 6시라지만 어둡다. 게다가 띄엄띄엄 얼고 녹고 하는 길 때문에 엉금엉금 운전. 여기다가 자욱한 새벽안개로 시야도 좁다. 보통 때보다 10분 일찍 출발했는데 금산 약속 장소에는 조금 늦게 도착.

 

정 샘을 만나 같이 대전역까지 함께 갔다. 대전쯤 가니까 날이 조금 밝아온다. 너무 이른 새벽에 낯선 길을 운전했더니 벌써 목이 뻣뻣하다. 살짝 걱정도 된다. 이러다 워크숍을 제대로 할 수 있을 지...

 

KTX가 좋기는 하다. 비싸서 그렇지. 대전에서 서울까지 딱 한 시간. 둘이서 몇 마디 나누다 보니 서울이다. 전철을 갈아타고 약속 장소로 갔다. 이 곳은 창덕궁 근처다. 그제야 배가 고파온다. 가져간 도시락을 꺼내 함께 먹었다.

 

차 한 잔 마시며 운영위원끼리 서로 인사를 나누다가 본격 워크숍. 징글징글한 회의를 시작. 평가를 하고, 돌아보고, 돈을 따져보고, 잘 했니, 뭐는 부족 했니, 어떻게 할 거니...쉽게 넘어갈 안건을 먼저 처리하기로 했는데 어, 하다 보니 점심시간. 앉은 자리에서 도시락으로 때웠다. 남은 안건이 산더미 같기에. 잠깐 쉬는 시간에는 또 그 시간대로 삼삼오오 미처 나누지 못한 개인적인 이야기들을 나누느라 또 두런두런. 바로 곁에 창덕궁을 두고도 산책조차 하지 못하다니.

 

오후부터 본격 토론. 이때부터가 내게는 갈림길. 계속 할 건가. 올 한 해는 쉴 건가. 내 고민을 과감 없이 이야기를 했다. 나는 솔직히 학교 문제에 그리 관심이 없다. 내가 연대 일을 하는 건 ‘홈스쿨러 연대운동’이나 ‘탈학교 운동’을 어떻게 펼쳐나갈까에 관심이 있기 때문. 그렇다고 이것만을 고집하는 건 아니며 긴 호흡으로 보자면 ‘배움의 문턱을 넘나드는 사회 만들기’가 된다. 말하자면 내가 바라는 사회는 누구나 원하는 곳에서 원하는 만큼, 배움과 성장을 해갈 수 있는 있는 세상이다.

 

그랬더니 대부분의 운영위원들이 호응을 해준다. 그제야 움츠렸던 내 목과 어깨가 조금 펴진다. 말을 하게 되면 거기에 따라 책임과 권리가 같이 주어지는 법. 내가 올 한 해도 운영위원을 맡는 쪽으로 정리가 되었다.

 

이왕 맡은 거면 분위기를 즐겁게 하고 싶다. 때로는 추어주고, 때로는 비틀고, 때로는 뒤집어보기도 하면서...교육이란 또 교육운동이란 권리이지 의무가 아니라고 보니까. 무겁고 딱딱할 필요는 없으리라.

 

나는 올 한 해 무슨 일을 할 건가. 운영위원으로서 해야 하고, 하고 싶은 일은 산더미다. 이 가운데서 선택을 한다면 공감대가 높은 게 좋지 않겠나. 내가 보기에는 지금 시기로 보자면 학교 폭력 문제. 이는 어제 오늘만의 문제도 아니고 앞으로도 쉽게 해결될 수 없는 영역이긴 하다. 그렇기에 사회적 공감대는 높은 편이다.

 

여러 운영위원들과 토론 끝에 내가 맡을 일을 ‘폭력 없는 배움터’로 잡았다. 여기서 배움터는 학교뿐만이 아니다. 넓게는 세상, 좁게는 가정까지. 또한 폭력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서 일은 무궁무진하게 뻗어간다. 물리적인 폭력뿐만이 아니라 정신적인 폭력 심지어 자신이 자신을 학대하는 ‘자기 파괴’도 폭력이지 않겠나. 이 부분은 업무 계획을 구체적으로 잡아가면서 가닥이 드러나리라 본다. 생각이 조금 더 정리되면 이 부분만 따로 글을 올릴까 한다.

 

이렇게 일을 분담하고, 운영위원장을 선임하고, 뒤풀이를 하다보니 어느새 내가 내려와야 할 시간. 올 위원장을 맡을 김희동 샘과 비슷한 열차 시간. 둘이서 뛰다시피 큰길까지 와서 택시를 잡았다. 택시 안에서도 둘이서 남은 이야기로 숙덕숙덕.

 

다시 열차를 타고 대전에 도착하니 그 다음날 새벽 영시 30분. 집에 도착하니 새벽 두 시다. 길고도 먼 서울 나들이였다. 꼬박이 23시간이다. 근데 여기서 신기한 것 두 가지만 더. 하나는 뒤풀이 때 술 한 모금조차 입에 대지 않았다는 사실. 또 하나는 전날 잠을 제대로 못 자, 회의 시간은 물론 차 안에서 많이 졸릴 줄 알았는데 내내 정신이 맑았다는 사실. 그래서 더 긴 나들이라는 느낌이 든 걸까.

출처 : 홈스쿨링 가정연대
글쓴이 : 아이른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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