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를 일로
아이들은 놀면서 자란다고 한다. 아이들에게 놀이란 게 참으로 여러 가지 일 테다. 몸으로 하는 놀이, 놀이 도구를 이용한 놀이, 혼자 노는 놀이, 여럿이 어울리는 놀이...근데 놀면서 새로운 놀이를 만들어낸다면? 이건 일이 된다.
오랜만에 아들 이야기 좀 해야겠다. 상상이가 보드 게임을 만들었다. 또래 모임이 있는데 이 모임 참석 때는 숙제가 있다. 이 숙제는 스스로 과제를 정해서 완성하는 거다. 자발적인 숙제인 셈이다. 그러다 보니 모임 전에 아이들은 무슨 숙제를 할까를 많이 고민한다. 기타를 배우는 아이는 기타 연주를 하기도 하고, 피아노를 치는 아이는 피아노 연주하고, 그림을 그리는 아이는 단편 만화 한 편 분량을 그려오기도 한다.
상상이가 생각한 이번 숙제는 새로운 보드게임 만들기. 이름은 꽃밭 쟁탈전. 이 게임을 손수 만드는 걸 곁에서 지켜보니 일이 보통 많은 게 아니다. 우선 게임 규칙 짜기다. 우리 때는 웬만한 놀이는 규칙이 간단했다. 대부분 딱지 따먹기, 만세 마당, 제기차기 같은 간단한 마당 놀이였고, 실내에서 하는 카드 게임이라고 할 수 있는 건 민화투가 전부였다. 화투로 하는 놀이도 다양했지만 놀이 규칙은 그 하나마다 그리 복잡한 편이 아니다.
근데 요즘 아이들이 하는 보드 게임은 종류도 많고, 게임을 세팅하는 데 몇 십분 씩 걸리는 복잡한 것들도 있다. 나는 아이가 한동안 보드 게임을 좋아할 때 카탄이란 게임을 식구들과 함께 해본 게 전부다.
근데 이번에는 상상이가 게임을 손수 만든다니 부쩍 관심이 갔다. 이건 놀이를 넘어 일이지 않는가. 워낙 손이 많이 가는 일이라 식구들이 도움을 주어야 할 정도로. 도움이란 그림 그리기다. 보드에는 곤충과 애벌레 그림이 많이 들어간다. 쌍살벌, 장수말벌, 반딧불, 딱정벌레, 나방...이런 곤충들을 이용해 꽃밭을 점령해간다는 놀이다. 기본 그림은 상상이가 그렸지만 곤충들은 대부분 탱이가 그려주었다. 모임 날짜가 촉박하자 나와 아내도 도와주기로 했다. 아내가 땅벌 집을 그리고, 내가 말벌 집과 애벌레를 그렸다.
그 덕인지 아이는 한 숨을 돌리며 여유를 되찾는다. 저녁에는 아이가 완성한 보드 게임을 가지고 둘러앉아 연습 경기를 해보았다. 나는 놀이규칙을 듣는데 머리가 어질어질하다. 메뉴안내 글이 A4로 두 장 가까이 되고, 그림 설명이 한 장, 여러 가지 말이 올망졸망 많다.
게임 규칙을 익히고 게임을 진행하면서 내내 든 생각은 상상이 머릿속이 궁금하다는 거다. 어떻게 이런 게임을 구상했고, 이를 구체화 시켰는가 하는 거다. 같은 식구로서 늘 보고 늘 함께 밥 먹고 이야기하며 살아왔는데 이런 생각이 아이 머리에 들어 있다는 게 너무 신기하다.
탱이가 묻는다.
“어때? 네가 만든 게임으로 해보니.”
“응, 재미는 있는 데 길어. 너무 복잡해서 보드게임을 좋아하는 사람 중에서도 마니아들이나 할 수 있을 거 같아.”
제 스스로 만든 보드 게임은 그 나름 뜻이 있는 거 같다. 비록 방안에서 하는 게임이지만 스스로 놀이를 창조했으니까.
손수 게임을 만들어 본 느낌은 뭘까.
“쉬운 게임 만들기가 정말 어렵구나. 쉬우면서도 재미있어야하니까요.”
또한 놀이를 일로 해본 느낌은 어떨까.
“시작은 참 좋았는데 완성해가는 과정은 정말 어렵더라고요. 만일 손으로 직접 만든 보드게임이 있다면 값이 백만 원대여도 이상할 게 없을 정도로.”
소설을 읽다가는 스스로 소설을 써보고, 음식을 먹다가 음식을 만들어보고, 보드 게임을 하다가 스스로 만들어본다. 살아가는 데 필요한 거라면 그게 무엇이든 아이들은 스스로 만들어보고자 한다. 소비보다 생산이, 놀이보자 창조가 한결 즐겁지 않겠나. 일은 아이들을 어른스럽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