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9월 달력 엄마
말하기 쑥스럽지만 이 달은 내 생일이 있는 달. 나는 생일하면 아무래도 엄마가 먼저 떠오른다. 아버지는 서운하실 테지만 말이다.
생일이 있는 달이니 엄마를 그려보고 싶다. 어머니가 아닌 ‘엄마’가 갖는 이미지는 사람에 따라 참으로 여러 가지리라.
나는 둘째로 태어났지만 갓난아기 때 젖이 부족했단다. 그래서 내가 몸이 약하다고 엄마는 이따금 나를 안쓰러워하곤 했다. 사실 우리 다섯 형제들은 나만 빼고 남자고 여자고 다들 몸집이 좋다. 엄마를 닮아 뼈대도 좋고. 나름 배포가 있어 사업가적인 자질도 조금씩은 물러 받았다.
그렇다고 내가 부모를 원망해본 적은 없는 거 같다. 나를 낳아준 것만으로도 고맙고 감사한 일이니까. 어쩌면 그 덕에 내가 아이들 이야기에 보다 많이 귀를 기울였는지도 모르겠다. 또한 그런 만큼 크게 욕심내지 않고 내 몸과 마음이 감당할 만큼만 하고 살자고 가끔 나를 다잡게 된다.
9월 달력으로 엄마를 그려야겠다는 구상은 연초에 이미 잡아놓은 상태. 지난 설날, 어머니를 뵈었을 때 얼굴을 보면서 스케치를 한다고 했지만 그림 실력이 영 아니올시다. 나중을 위해서 우선 사진을 찍어두었다.
이 사진을 보면서 어머니를 그렸다. 그림에서 인물 그리기는 더 어렵다고 한다. 화가도 사람을 닮게 그리기는 참으로 어렵다 한다. 하물며 나야 말해 무엇 하랴. 그래도 어느 정도는 그려야 달력에 걸어둘 수 있겠다 싶어 이 참에 그림 공부도 좀 했다.
김충원이 지은 <스케치 쉽게 하기, 인물 드로잉> 편이다. 이 책을 보면 정말 우리는 사람 얼굴에 대해서는 적지 않는 편견을 갖고 있다는 걸 알게 된다. 그림이란 일단 편견 없이 대상을 있는 그대로 보아야하는 데 그림 실력도 부족한 데 편견까지 겹치니 더 어렵다.
그러면서도 책의 저자는 전문가도 인물을 닮게 그리는 것은 어려운 일이니 되도록 느낌을 살려야한다고 한다. 내가 엄마를 그리면서 느끼는 건 많다. 우선 우리 엄마 얼굴을 처음으로 찬찬히 구석구석 본다. 이렇게 여러 번 오래도록 엄마를 본적이 있던가.
이제는 엄마를 안 보고도 어느 정도 특징을 말할 수 있겠다. 내가 잡은 특징 몇 가지만 들자면 우선은 귀가 크고 귓불이 두툼하다. 그리고 눈썹 좌우가 크게 차이가 난다. 오른 눈썹은 그런대로 모양을 갖추었지만 왼쪽 눈썹은 희미하다. 그리고 내 눈이 작은 건 아마도 내가 엄마 눈을 닮았지 싶다. 엄마는 일흔 여섯 나이 임에도 이빨이 건강한 편이다. 왼쪽 눈썹 위를 반달처럼 살포시 덮고 있는 주름살도 우리 엄마만의 주름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이 달에는 처음으로 연필로 스케치만 했다. 그리고 지우고 또 그리고 지우고...그냥 이렇게 연필로 그리고 지우면서 엄마를 그리워하는 것 자체가 좋았다. 색을 입힌다는 건 전혀 감당이 안 된다. 어설프게 색을 칠했다가는 엄마 모습에서 더 멀어질 거 같은 두려움도 있었다.
이 달에는 그림을 웬만큼 그리고 나서야 글을 썼다.
<엄마>
작은 눈
큰 귓바퀴
일흔 여섯 우리 엄마
엄마가 애써 농사지은
들기름 참기름
우리 식구는 해마다
얻어다 먹는다.
쉰 살 넘은 나는
아직도
환한 엄마 품 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