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홈스쿨러 사회성(6) 아이 욕구를 일로 바꾸기
(아래 글은 주인공인 참빗나무네 집에 와서 쓴 것이며, 참빗이가 보고 마무리했습니다.^^)
아이들 사회성과 일은 서로 떼어놓을 수 없는 관계라고 이야기한 적이 있다. 이와 관련하여 앞에서 <일머리 익히기>와 <일자리 창출하기>라는 주제로 간단히 살펴본 바 있다. 그럼, 아이들에게 이 일을 일상에서는 어떻게 발전시킬 것인가. 뭐든 그렇듯이 일상에서 이루어질 때 사회성도 자연스레 자라기 때문이다. 이 역시 다양한 관점에서 접근이 가능할 테다.
배움이 아이들에게 기쁨이자 권리이듯이 일 역시 마찬가지. 어쩌면 홈스쿨러들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자 자유에 가깝다고 할까. 단 그 부모가 아이의 성장 욕구를 제대로 이해를 해 준다면 말이다.
이 꼭지에서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제목 그대로 ‘아이 욕구를 일로 바꾸기’다. 좀 막연한가. 사람에게는 다양한 욕구가 있다. 이 가운데 기본 토대가 되는 욕구는 말할 것도 없이 먹고 자고 싸는 욕구다.
그럼 이 가운데 가장 기본이 되는 먹는 욕구 또는 먹고자하는 마음을 어떻게 일로 바꿀 것인가. 우리 <홈스쿨링 가정연대> 아이 가운데 ‘참빗나무(닉네임)’가 있다. 참빗이는 열 살 나이 남자다. 학교를 벗어난 지 이제 한 달도 채 안 된 홈스쿨러.
한창 자라는 아이들에게는 먹는 거 만큼 소중한 욕구가 있을까. 게다가 이 욕구는 하루에도 여러 번 일어난다. 이 욕구를 일로 바꾸면 아이 사회성은 그 중심이 튼튼해지면서 둘레로 뻗어간다. 최근에 참빗이가 했던 일을 중심으로 살펴보자.
아이가 먹고자하는 욕구를 일로 바꾸게 된 직접적인 동기는 정현이가 지은 <열두 달 토끼밥상>이였다. 아이는 정현이에게 이 책을 선물 받았고, 만화로 풀어낸 어린이 요리책은 그 자체로 아이에게 흥미를 갖게 했다.
한번 보고 두 번 보고...보지 않아도 먹고 싶은 게 아이들이다. 근데 바로 눈앞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요리법이 나와 있지 않는가. 아이는 충분히 책을 읽고 또 요리 앞뒤 맥락을 살펴, 자신 있다고 여길 때 나선다. 배가 고파, 요리를 해보겠다고 아이가 잡은 첫 레시피가 주먹밥이다. 주먹밥, 참 간단한 음식이지 않는가. 밥을 고슬고슬하게 지은 다음 기본양념만 해서 손으로 꼭 쥐기만 하면 된다. 여기다가 제철 채소나 먹을 수 있는 꽃잎을 곁들이면 보기도 좋은 음식이 된다.
아이가 이렇게 요리를 하고자 팔을 걷어붙일 때 부모가 할 일은 ‘너는 공부나 해!’ 하고 아이를 내치는 게 아니라 아이 욕구가 일이 되게 곁에 잘 지켜보고 필요로 하는 것들을 도와주는 것이다.
아이는 자신이 할 수 없거나 모르는 거 빼고는 되도록 손수 하려고 한다. 아이가 엄마에게 물은 건 그리 많지 않았다.
“엄마 그릇이 필요한 데? 양념은 뭐 있어?”
보통 때는 산에 가는 걸 싫어하던 아이가 부쩍 용기를 내어, 혼자 집 뒷산을 오르고, 진달래 꽃잎을 따오는 것조차 스스로 한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은 이렇게 아이들을 용기 있게 만든다.
자, 이러저런 과정을 거쳐 아이는 고사리 손으로 주먹밥을 완성했다. 이 때 아이 기분이 어땠을까? 나 혼자 추측해보자면 날고 싶었을 것이다. 양손에 주먹밥을 쥐고 온 식구들에게 알리고 또 먹여주고 싶을 것이다.
(주먹밥 사진은 참빗나무 아버지인 참죽나무 제공^^)
자, 이쯤에서 아이 사회성이 눈에 그려지지 않는가. 아이는 주먹밥 만들기라는 일을 했다. 이 일은 자신만이 만족하는 개인 일이 결코 아니다. 식구들을 먹여주는 든든한 가족의 일이다. 보통 때는 엄마가 다 하던 일이다. 이젠 아이도 식구 한 사람 몫을 했다는 뿌듯함이 컸을 테다. 그러니 아이 사회성은 작은 주먹밥 하나로도 얼마나 크게 발전하는가.
참빗이 사회성은 여기에 머물지 않는다. 주먹밥을 해 놓고 식구들에게 알리고 식구들이 함께 먹기를 기다린다. 그런대도 밭에서 일하는 아빠가 나타나지 않으면 아이는 속이 탄다. 처음에는 자신이 만든 주먹밥을 금방 먹으려 나타나지 않는 아빠가 서운할 수도 있다. 하지만 아이는 곧 아빠가 일이 많은가 보다 하고 아빠를 이해하려한다. 이 정도 결심이 서면 아이는 아빠를 기다리기보다 일하는 아빠 곁으로 주먹밥을 들고 간다.
땀 흘리는 아빠를 쉬게 하면서 주먹밥 한 덩이를 입에 넣어줄 때의 아이 기쁨이란! 이 부분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테다. 아이 아빠의 감동만으로 그 기쁨이 어느 정도 전달될 테니 말이다.
열 살 아이 사회성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아이 주먹밥을 받아먹은 아빠는 그 감동을 글로 쓰고 사진을 찍어 인터넷에 올린다. 그럼, 이를 본 여러 사람들이 삶에 희망을 얻는다. 근데 이보다 더 소중한 사회성은 바로 비슷한 또래 어린이들에게 꿈과 용기를 준다는 거다.
참빗이가 주먹밥 만든 이야기를 인터넷 카페에 올리자, 이를 본 아이들 반응. ‘나도 해 볼래!’ 그렇다. 아이들은 아이들만의 세계와 사회가 있는 법이다.
아이들 사회성을 이야기할 때 어른 중심의 사회성으로 본다면 이는 아이 성장을 왜곡시킨다. 아이들은 아이들만의 공감대가 있고, 이는 바로 아이 사회성을 높이는 직접적인 지름길이 된다. 또래 아이들에게 울림을 주면서 성장하는 아이는 어른이 되면 당연히 또래 어른들에게 울림을 주는 일을 하게 마련이지 않는가. 사회성은 어느 날 하늘에서 갑자기 뚝 떨어지는 그 무엇이 아니다. 이렇게 성장과정에서 자연스레 자라는 삶의 한 부분일 뿐이다.
정현이는 만 열 세 살에 중학교를 그만두었고, 만 열 여섯 살에 ‘열두 달 토끼밥상’ 이야기를 <개똥이네 놀이터>라는 어린이 잡지에 연재하기 시작했다. 그 당시만 해도 이런 시도는 반응이 꽤 좋았다. 새로움이 생명인 잡지에 3년을 연재했으니까 말이다. 당시에 시중에 나와 있는 어린이 요리책이라도 대부분 어른이 쓴 것들이다. 근데 잡지 연재물을 엮은 이 책은 초등 아이들 바로 위 언니거나 누나가 쓴 거라는 이유만으로도 아이들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런 시도가 가능했던 건 정현이가 특별히 재주가 뛰어나서가 아니라, 바로 학교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자라고자 하는 아이 욕구를 존중하고 살려주었기 때문이다.
이제는 바로 참빗이 같은 어린이 홈스쿨러들이 자연스레 그 뒤를 이어받을 차례가 아닐까. 그렇다고 무리할 거 없다. 참빗이는 조금씩 실력이 늘고 있다. 주먹밥에 이어 ‘김치국물볶음밥’에 이어 ‘쑥달걀찜’으로 차근차근 나간다. 그러니 아이에게 그 어떤 욕구가 올라올 때 이를 존중하고 지켜보면서 필요한 것들을 그저 조금씩만 받쳐주면 된다. 아이들 사회성은 이미 그 안에 다 숨 쉬고 있는 거니까. 자연스레 자라는 아이가 부모에게 손을 내미는 건 그리 많지 않다. 손을 내미는 기간 역시 결코 길지 않다. 아이가 내미는 고사리 손을 따뜻이 잡아줄 때 우리 사회는 그야말로 살 만한 사회가 되지 않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