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급자족/노래 그림 중독, 삶의 예술

[스크랩] 삶을 가꾸는 노래 짓기(1) <목숨꽃> (어린이문학 2011 봄호)

모두 빛 2011. 3. 20. 07:22

 

 

나는 노래가 서투르다. 부끄러울 정도로. 음감이 떨어지고 박자, 리듬, 멜로디를 잘 모른다. 이웃들과 합창을 해보면 내가 많이 틀린다. 노래방 가서조차 18번이랍시고 부르는 노래가 하나 정도 있을 뿐. 악기 역시 제대로 다룰 줄 아는 게 없다.


좌절을 넘어


  보통 때는 음악을 모르고 살아도 된다. 그런데 요즘 우리 아이들 둘이 틈틈이 피아노를 두들긴다. 한 곡 한 곡 치고 나가는 맛이 좋은가 보다. 학교나 학원에서 교육을 받은 적이 거의 없는 데도 음악을 즐긴다. 어쩌면 남이 이래라저래라 하지 않기에 음악을 즐기는 지도 모르겠다. 부모는 음악에 대한 재능도 없고, 관심조차 적은데 아이들이 스스로 해가니 신기할 뿐이다. 아마 호기심에서 시작하고, 자신이 흥이 날 때 치니까 그런 게 아닐까 싶다. 궁금함에 작은 아이에게 피아노를 열심히 치는 이유를 물어보았다.

 

“피아노를 치다가 막히잖아요. 그럼 막힌 바로 그 부분이 가장 아름다운 게 아닐까 싶어요. 그러니까 자꾸 그 벽을 넘어보고 싶은 거지요.”

  이런 분위기 때문인지 아내도 역시 피아노를 치기 시작했다. 앞뒤가 이러니 나만 더 외톨이가 된 듯하다. 안 되겠다 싶어, 나 역시 겨울이면 어렵사리 용기를 내어 피아노 앞에 앉아 둥당거려보았다. 그 과정에서 아내도 우리 딸 탱이도 나를 많이 도와주었다.

“자신이 좋아하는 곡을 쳐봐요. 한 곡 피아니스트라는 말도 있잖아요?”

 

  그 말대로 이 곡 저 곡 집적대어 보았지만 연습을 할수록 손은 오그라들고, 악보는 벽처럼 높았다. 역시 나는 안 되는가?

  그런데 지난해 봄 무렵, 이번에는 좀 다르게 음악이 내게 다가왔다. 뜻하지 않게 영감을 받았다. 이웃 가운데 나이 오십이 넘어, 작곡을 한 사람이 있다. 이 분은 미술교사를 하다가 학교를 그만 두고 농사를 지으며 틈틈이 그림을 그린다.

  그러다 몇 해 전부터 기타를 손에 잡더니 자신을 음악으로 표현하기 시작. 드디어 얼마 전부터 작곡을 시작했단다. 그런데 그 동기가 재미있다.

“글만으로는 느낌을 제대로 나누기 어렵데요. 그래서 글에다가 곡을 붙이니까 한결 낫더라고요.”

 

  아하, 그런 길이 있구나! 나로서는 무척 감동스런 이야기였다. 내 나이에 새로운 분야를 만난다는 것도 좋았지만 자신이 쓴 글에 느낌을 더하기 위해 곡을 붙인다는 생각이 참 좋았다. 나도 글을 자주 쓰는 편이니 한번 해보고 싶은 마음이 어슴푸레 들었다.

 

그러다가 아내가 어느 모임에서 작곡가이며 가수이기도 한 백창우씨 이야기를 들었단다. 이 분 이야기 역시 작곡 초보자에게 용기를 준다. 아내가 들려준 이야기를 내 식으로 간추리면 이렇다.

 

“작곡은 중학교 음악 교과서를 볼 정도면 된다. 우선 먼저 곡을 흥얼거린다. 어느 정도 되면 녹음을 한다. 음악을 조금만 하는 사람이라면 녹음된 내용을 가지고 악보를 그려줄 수 있다. 그리고 장조니 단조 같은 것도 고민할 게 없다. 우선 쉬운 다장조부터 하라.”

 

노래를 딱 한 곡만 짓는다면?


  자, 그럼 어디서부터 시작할까. 그렇다고 출발선이 또렷이 보이지 않는다. 나처럼 재주가 없는 사람에게는 더 특별한 뭔가가 필요하다. 이걸 하지 않고는 못 베길 정도의 마음이랄까. 그건 바로 오래도록 쌓이고 쌓여, 뭔가로 살짝만 건드려주면 터져 나오는 내안의 느낌이겠다. 내가 살아가는 동안 결코 잊을 수 없는 순간, 묻어두고 눌러두어도 불쑥 불쑥 떠오르는 순간 말이다.

 

  내게는 그런 순간이 언제인가? 농사를 짓다가 처음으로 벼꽃이 피는 과정을 눈으로 봤을 때다. 내 삶을 통틀어 노래를 딱 한 곡만 짓는다면? 나는 바로 이 벼꽃을 노래로 부르고 싶어라.

 

  벼꽃 이야기가 나온 김에 좀더 해 보자. 벼꽃은 벼가 자라면서 한여름 무더위에 피는 꽃이다. 벼꽃이 뭔가. 바로 우리네 쌀이 되고 밥이 되는 꽃이다. 세상에는 꽃이 많기도 하지만 가장 소중한 꽃을 꼽으라면 나는 망설임 없이 벼꽃을 들겠다. 우리네 피가 되고 살이 되어, 목숨을 살려주는 꽃이 아닌가. 하여, 나는 벼꽃을 ‘목숨꽃’이라 부른다.

 

  그런데 이 벼꽃은 자세히 보지 않으면 잘 보이지 않는다. 암술은 껍질 속에 깊숙이 있어 활짝 벌어졌을 때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는 한 보이지도 않고, 수술은 머리카락보다 더 가늘어 보일 듯 말듯하다.

 

  그나마 벼꽃은 그리 아름답지도 않다. 수술은 노란 빛이 살짝 섞인 흰빛이라 그저 심심하다. 그 흔한 꽃잎조차 흔적만 남아있을 뿐. 오래 피지도 않는다. 껍질 하나가 벌어졌다가 수정을 끝내고 다시 닫히는 순간을 지켜보니 기껏 한 시간 남짓. 벼꽃은 꿀이 없고, 꽃가루는 맨눈으로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으니 벌도 나비도 날아오지 않는다. 뜨거운 햇살과 중력의 도움으로 수정을 끝낸 벼 꽃 한 송이는 그 뒤 벌레들이 뚫고 들어오는 걸 이겨내며, 다시 40여 일쯤 지나서 쌀 한 톨이 된다.

 

   그런데 겉보기와 달리 알면 알수록 벼꽃이 끌린다. 날씨가 좋다면 그 날 오전 열한 시에서 오후 한 시 사이에 많이 핀다. 우리네 결혼식도 대부분 그 시간대가 많지 않나. 수정 순간도 사람 몸짓과 닮았다. 수정을 끝낸 수술이 서서히 축 늘어지는 모습 역시 남자의 성을 보는 듯 쉽게 잊혀지지 않는다.

 

  또한 벼 낟알의 껍질은 얼마나 굳건한가. 수정하기 전이나 수정 뒤에는 때가 되지 않는 한, 제 스스로 벌어지는 법이 없다. 수정 전은 처녀성을 굳건히 지키는 것이며, 수정 뒤는 모성을 고스란히 품는다. 햇살에 잘 말린 벼는 일년쯤 지나도 끄덕 없다. 그 이유는 바로 이 껍질 때문이다. 벼 껍질은 벌레나 곰팡이가 뚫고 들어오는 걸 물리친다. 같은 조건에서 팥이나 수수 같은 곡식은 팔월만 되면 줄줄이 벌레가 나는데 말이다. 그러다가 온도와 습도가 알맞다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껍질을 벌려 싹을 내민다. 벼는 물이 그득한 논에서도 잘 자라지만 물이 잘 빠지는 밭에서도 김만 매 주면 잘 자라, 열매를 맺는다. 물이 부족한 산골에는 지금도 밭벼가 이어 내려올 정도로. 심지어 아주 따뜻한 나라에서는 한 해에 두 번 세 번 벼농사가 가능하단다. 이렇게 끈질긴 생명력이 있기에 그 많은 사람이 목숨을 이어오고 또 자식을 키워온 셈이다.


모두가 자기다운 꽃으로 피어나자


  벼꽃은 내 삶을 자주 돌아보게 한다. 나는 그동안 내 목숨을 얼마나 소중히 여겼던가? 담배가 나쁘다는 거 알면서도 이를 못 끊어 오래도록 괴로워했던 적도 있었다. 술을 많이 마시면 머리가 아프고 때로는 토하면서 쓰디쓴 위액을 게워야할 때는 또 몇 번이었던가. 내 숨결 내 걸음걸이를 제쳐두고 헉헉대며 지나온 세월하며, 사람 관계에서 서로 자신의 생각이 옳다고 칼날 같은 말들로 주고받은 상처들은 또 얼마나 깊었나.

 

  우리가 먹는 쌀 한 톨은 벼꽃 하나가 피고 져, 영근 열매다. 우리가 먹는 밥 한 그릇은 그런 벼꽃이 한 다발쯤 피었다가 진, 하늘이 주신 목숨이다. 이렇게 소중한 목숨을 소중하게 돌보지 못했던 내 아픔을 먼저 스스로 감싸고 싶다. ‘이젠 괜찮아. 다 잘 될 거야.’라며. 벼가 자라는 들판을 걸으며, 논두렁에 쪼그리고 앉아 벼꽃이 피는 걸 지켜보면서 솟아나는 느낌을 시로 쓰기 시작했다.

 

  이 시는 어린이 신문 <굴렁쇠>에 실렸다. ‘벼꽃’이라는 제목으로. 내가 노래를 만들어보겠다고 마음먹은 순간, 가장 먼저 끌린 시다.

 

  ‘벼꽃’에 느낌을 살려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하다가 나름 괜찮다고 생각되면 녹음을 했다. 시를 가지고 이렇게 노래로 짓다보니 시도 다시 고치게 된다. 노래를 짓는 과정에서 제목도 ‘목숨꽃’으로 바꾸었다. 흥얼거리다가 곡도 다시 고치고. 어떨 때는 머릿속에 온통 곡만 들어가 있기도 했다. 일하다가는 물론이요, 밤에 자려고 누웠다가도 내 마음에 드는 멜로디가 떠오르면 벌떡 일어나 메모를 하고 녹음을 하곤 했다. 일주일 정도 걸려 어느 정도 녹음이 되자, 탱이에게 악보를 그려 달라 했다.

 

  탱이가 해준 악보를 보는 순간, 감동이다. 전문가가 볼 때는 어설프기 짝이 없겠지만 나로서는 기쁘다. 이제 이것을 토대로 틈틈이 피아노를 아기가 걸음마 배우듯 둥당거리면서 다시 곡을 다듬는다.

 

  내 선에서 어느 정도 되었다고 생각이 들자, 이제는 틈만 나면 이웃들 앞에서 발표도 하고, 도움말을 듣고 또 다듬는다. 남이 작곡한 노래를 듣거나 부르기만 하다가 스스로 곡을 만들고 다듬는 과정이 즐겁기만 하다. 또 음치(音癡)에 가까운 내가 이렇게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이 스스로 생각해보아도 놀랍고, 신기하다.

 

  글쓰기가 자기 삶을 먼저 가꾸듯이 노래도 그러한 거 같다. 지금도 나는 ‘목숨꽃’을 가끔 부르면서 자신을 추스른다. 누군가에게 좋지 않는 말을 내가 했거나 들었을 때, 보지 않으면 더 좋았을 걸 보았을 때, 먹지 않아도 될 것들을 먹었을 때.... 그럴 때면 이 노래를 부르면서 자신을 돌아보곤 한다.

 

  우리 둘레를 보면 제 목숨을 하찮게 여기는 사람들이 참 많다. 돈이 전부인 것처럼 또 경쟁만이 살 길 인양 세상이 미쳐 돌아가다 보니 제 중심을 굳건히 지키며 살아가기가 쉽지 않긴 하다. 하지만 그 동기가 어디에 있든 이런 사회는 어른은 물론 자라는 아이들마저 쪼그라들고 병들게 한다. 어른으로서 아이들 성장을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망쳐서야 되겠나. 이 땅의 평화는 거창한 철학이 아니라 제 목숨을 먼저 소중히 여기는 데서 시작한다고 나는 믿는다.

 

  볼품없는 벼꽃이 우리네 목숨을 살리듯이 역시나 보통 사람들의 땀과 노력이 우리 사회를 빛나게 한다. 우리 모두 부모가 물려준 목숨이니 소중하게 가꾸자. 이 땅의 아이들도 남과 경쟁으로 주눅 들고 병들게 하지 말고, 모두 자기다운 꽃으로 소중하게 피어나게 하자. 그런 세상이 올 때까지 나는 ‘목숨꽃’을 계속 부르고 싶다. 목숨을 생각하며, 천천히.

                                             

출처 : 홈스쿨링 가정연대
글쓴이 : 아이른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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