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급자족/노래 그림 중독, 삶의 예술

글이자 그림인 우리 어머니 솜씨

빛숨 2011. 2. 4. 06:26

 

 

           (100년이 넘은 시골 집 감나무의 가지들. 늙어 부러지기도 하면서  해마다 새가지를 낸다)

 

식구들끼리 일상을 지내다가 명절에는 대가족이 모인다. 대가족이라 해봐야 우리 어머니와 그 아들 삼 형제와 그 자녀들이지만. 사실 명절에 오랜 만에 만나더라고 뭔가 새로운 것을 기대하지는 않는다. 직장과 학교를 오고가는 삶에서 오는 변화들이란 사실 그리 새로울 게 없으니까 말이다.

 

이번 설은 조금 달랐다. 오랜만에 만나 서로 인사 나누는 과정에서 나온 우리 어머니 이야기. 한글을 배우고 있단다. 쑥스럽고 부끄러워하며 조심스레 꺼낸 이야기에 온 식구들 얼굴이 확 펴지며 여기저기 축하와 격려가 쏟아진다. 그러자, 어머니는 기다렸다는 듯이 갓 입학한 어린이 마냥 이야기를 풀어낸다.

 

“뒷집 상희네 있잖아? 상희 신랑이 서울 살다가 이 마을로 살려고 온 거야. 마을 할머니들한테 한글을 가르치겠다고 하데. 내가 이 나이에 뭘 배우노? 하며 안 한다 했는데도 자꾸 마을 회관으로 찾아와서 하자는 거야. 자기가 책이랑 이런 거 다 준비할 수 있다고.”

 

상희 신랑은 서울서 학원을 했단다. 마을 할머니들한테 정성으로 다가가자, 지금은 열 네 사람이 함께 배우고 있단다. 일주일에 세 번. 아내 역시 여기 이웃 동네 한글 교실에 자원봉사를 해서인지 특히 관심이 많다.

“어머니, 글 쓰신 거 어디 봐요.”

“에이, 안 돼. 자꾸 손이 떨려서 글씨가 안 돼.”

 

 

 

                                 (글이자 그림이며 악보 같기도 한 우리 어머니 작품!)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어느 새 어머니는 당신이 한글 교실에 들고 다니는 가방, 정확히는 쇼핑백을 가져오신다. 그 안에는 초등학교 일학년 국어교과서와 받아쓰기 공책이 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연습장. 이 연습장은 다른 게 아니라 바로 달력 뒷장이다. 거기에 본인 이름은 물론 함께 한글 공부하는 마을 할머니들 이름이 나란히 또박또박 써 있다.

 

우리 어머니 학력은 초등학교 이학년 중퇴다. 글자를 겨우 읽기만 할 뿐, 쓸 줄 아는 글자는 당신 이름 정도다. 그런데 이젠 주소도 마을 이웃들 이름도 적을 수 있다. 비록 조금 틀리기는 했지만.^^ 사진에 보다시피 겅상도란 도는 우리나라에 없다. 경상도를 겅상도라 발음을 하니 그렇게 적는다. 어머니가 그렇게 쓸 수밖에 없기에 내 눈에는 더 아름답게 보인다.

 

글을 처음 배우는 사람에게는 글과 그림 구분이 없다. 어쩌면 이름마다 그 얼굴을 떠올리며 글씨를 그렸는지도 모른다. ‘년연’은 올라가고 ‘창분’은 흐르듯 내려온다. 마치 음악 기호 같기도 하다. 또 이름들은 그 자체로 얼마나 아름다운가. 여기 할머니들은 다 누구 댁이 아니면 누구 엄마로 불리며 평생을 살아오던 사람이다. 이제 모두 자기 이름을 적고 또 이웃들 이름을 서로 알게 되니 삶의 중심을 든든히 하는 셈이다. 그 과정에서 서로를 알고, 가난하고 어려웠던 삶을 위로하며, 못 배우고 못 났다고 여긴 자신들을 기꺼이 서로 감싸고 웃음 짓게 하면서 삶을 풍성하게 하지 싶다.

 

우리 어머니는 열일곱인가 열여덟에 시집을 와, 우리 형을 낳고 그 다음 나를 스물 하나에 낳았다. 우리 막둥이 낳았을 때가 희미하게 내 기억에 남아있다. 내가 일곱 살 무렵인가, 밖에서 놀다가 오니까 방안에 핏자국이 드문드문 했다. 직감으로 어머니가 동생을 낳았다는 걸 알았다. 어머니는 아기를 낳고 당신 손으로 아기를 거두고, 방바닥에 묻은 핏자국을 대충이나마 닦고 다시 일을 나가야했기에 아기를 낳은 흔적만 잠깐 내 눈에 보였을 뿐이다.

 

올해로 당신 나이가 일흔 여섯. 그런데도 나보다 농사를 더 많이 하고, 더 잘 짓고, 농업소득도 더 많다. 자식 다섯 가운데 쌀은 우리 집 빼고 다 나누어준다. 우리도 원한다면 얼마든지 당신이 농사지은 쌀을 주신다. 어디 이뿐인가. 들기름이야 참기름도 손수 농사지은 걸 마련하여 설이면 다섯 자식들에게 고루 나누어주신다.

 

이런 어머니였기에 내가 귀농한다고 했을 때 둘레 어른들이 다 말렸지만 어머니는 나를 이해했다. 우리 아이들이 학교를 안 다니겠다고 했을 때도 다른 어른들은 심하게 반대를 했지만 어머니만 고맙게도 담담하게 받아들여주었다.

 

그런 어머니가 이번에는 늙어가면서도 배울 수 있다는 걸 똑똑히 보여주셨다. 농사가 한가한 겨울이면 거의 날마다 회관에 모여 화투 놀이와 수다로 보내던 어머니 삶이 달라지고 있다. 어머니 글씨만큼이나 노년이 아름답다. 

 

새해란 뭔가 새롭게 달라지는 삶이겠다. 어머니 투박한 글씨에서 들기름 참기름만큼이나 고소한 향기가 오래오래 전해온다. 당신 자식인 내가 자랑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