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급자족/자급자족

도서관에서 이웃들과 만남, 또 하나의 생활 문화

모두 빛 2009. 2. 15. 14:34

 

 

 

이웃들과 조금 특별한 만남을 가졌다. 이름 하여 ‘작가와의 만남’이다. 우리가 사는 가까이에 능길 작은 도서관이 생겼는데 그 도서관에서 이번에 나를 초청했다. 새 책 <피어라, 남자>를 낸 걸 기념하면서 독자와의 만남을 꾸린 것이다.

 

그동안 책을 몇 번 냈지만 이런 자리는 처음이다. 저자로서 대도시로 가서 독자들과 만남은 여러 번 있었지만 내가 사는 곳에서 가까운 이웃들과 만남은 특별했다. 옆마을에서 농사짓고 사는 이웃이며 여성 목사님인 박후임씨에게 사회를 부탁했다. 여성이 진행을 봐주면 부드럽고 좋지 않을까? 게다가 그이가 우리와 함께 농사짓고 사는 이라면 더욱 좋지 않겠나.

 

처음 이 만남을 기획할 때는 과연 누가 올까. 몇 명이나 올까. 나로서는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러나 도서관 측에서는 20~30명은 가능하단다.

 

전날은 봄비가 흠뻑 와주었고, 당일은 초여름 날씨만큼이나 화창하고 따뜻했다. 시간이 가까워오니 반가운 사람들부터 하나 둘 모인다. 진행을 맡기로 한 후임씨와 언제나 활기가 넘치는 삼례씨를 보면서 사람이 많지 않더라도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겠구나 싶었다.

 

조금 지나자 ‘만나 공부방’에서 이무흔 선생이랑 교사 몇 분과 아이들이 우르르 왔다. 좀더 있으니 새울터 마을에 입주한 아이들과 어른들이 우르르 들어온다. 새울터는 지난 연말부터 입주를 시작한 새로운 마을로 우리 집에서 10분 남짓 거리다. 이렇게 모여드니 작은 도서관이 꽉 차, 자리가 좁았다. 얼추 어른 20명에 아이들도 20명쯤 된다. 의자에 다 앉지 못하는 사람은 도서관 바닥에 앉았다.

 

이렇게 생각지도 않게 아이들이 많이 오자 행사 진행을 어찌 할지 조금 난감했다. 그런데 진행자가 즉석에서 진행을 아주 매끄럽게 해 주는 게 아닌가. 아이들 전체 소개를 하고, 아이들 관심을 책에 집중을 시킨다. 이게 보통 능력이 아니다.

 

“어린이 여러 분이 오니 제가 무슨 말을 해야 할 지 머리가 하얗게 비었어요.”

이렇게 웃음을 선사한 다음 만화책을 한 권 들고 이야기를 한다.

“이 책이 뭐예요?”

“그리스 로마신화요.”

“어때요?”

“아주 재미있어요.”

“그럼, 이 책을 누가 썼는지 알아요? 만화는 누가 그렸는지 아나요?”

 

아무도 대답이 없다. 그러면서 책이 어떻게 나오는지, 저자란 무얼 하는 사람인지를 이야기 하며 오늘 행사로 아이들 관심을 유도했다.

그리고 나서 내게 궁금한 걸 묻게 했다. 나 역시 사회자 못지않게 당황스러웠다.

아홉 살 지원이가 먼저 손을 들고 질문을 한다.

“책을 어디서 만들었나요?”

 

지원이 질문에 나는 버벅 댔다. 간단히 답을 하면 될 걸 어른 기준으로 말을 해버렸다. 얼굴이 뜨거워진다. 이어서 새울터에서 온 아이 질문.

“<피어라, 남자>라는 책 제목이 특이한 데 그렇게 지은 이유가 궁금해요.”

질문 내용이나 수준이 놀랍다. 이렇게 아이들은 겉만 보고도 많은 걸 느끼고 있다. 나도 이제는 조금 여유가 생겨 그런 대로 답을 했다. 또 다른 아이 질문.

“책에는 어떤 내용을 담고 있나요?”

 

헉! 사실 책을 낼 때는 독자층을 생각하고 글을 쓴다. <아이들은 자연이다>는 초등학교 고학년 독자부터 마음에 두었다면 <피어라, 남자>는 사춘기 청소년 이상을 마음에 두었다. 그러니 이 아이들 질문에 아이 수준에 맞는 뾰족한 답을 찾기가 어려워 부끄러운 내 고백을 먼저 했다. 그동안 나는 부부 싸움도 많이 하고, 아이들과도 잘 지내지 못했는데 이를 반성하고 이제는 남편으로서 또 아버지로서 기쁨을 마음껏 누린다 했다. 세상의 수많은 아버지와 남편들이 책임감에 너무 짓눌리지 말고, 자신을 사랑하고 자신의 꿈을 잘 피워갔으면 좋겠다 했다.

 

이런 정도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아이들은 밖에서 놀게 했다. 그 다음 어른들과 서로 인사를 나누고 만남을 이어갔다.

 

첫 번째 자신을 소개한 분이 ‘문화’를 이야기 했다. 시골에서도 이런 문화를 잘 살려가면 좋겠다는 취지다. 나로서는 백번 공감이 가는 말이다. 시골 살다보면 자녀 교육은 물론 문화측면에서 상대적인 빈곤감을 느끼기 쉽다. 그러다 보면 자꾸 도시 소비문화를 기웃거리게 된다. 영화도 음악도 전시도 도서관도 도시 중심이다. 환경이 이러니 시골에서 이를 같은 비중으로 누리자면 도시보다 돈도 시간도 배 이상이 든다. 그러다 보니 시골 어른들이 긴 겨울을 보내는 게 땔감을 하지 않는다면 고작 티브이를 본다거나 마을 회관에 모여 술내기 화투를 치는 풍습을 보여주곤 한다. 

 

그런 점에서 시골 작은 도서관에서 기획하는 ‘작가의 만남’은 새로운 시골 문화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게 아닌가 싶다. 사실 도시도 문화가 풍성하지만 시골은 시골대로 그 잠재 가능성이 많다. 우선 자연환경이 넉넉하니 그 자체로 문화적인 휴식과 영감을 받게 된다. 예술이란 창조적 영감에서 나오고 그 영감이란 사실 자연을 기초로 하지 않는가.

 

여기다가 여기 이웃들의 역량도 크다. 지역에서 대안학교를 꾸리고, 새로운 마을을 만들며, 마을 공동체를 꾸려내고, 지역도서관을 살리고자 애를 쓰는 이웃들이 많다. 중요한 건 구슬도 꿰어야 보배라는 말처럼 이들 역량을 어떻게 모아낼 것인가에 달려있지 않겠나.

 

아이들이 밖으로 나가고 어른들만으로 다시 자리를 갖추자 나누고 싶은 이야기들이 많았다. 내가 간단한 기조발제를 하고 질의 응답하는 데만도 한 시간 이상이 걸려 시간이 부족했다. 한 가정은 이 자리에 참석하기 위해 멀리 서울에서 가족이 다 함께 올 만큼 절실한 부분이 있기도 했다.

 

사실 나로서는 좀더 욕심을 내어 깊이 있는 만남을 원했다. 그러자면 책을 미리 읽고 오든가 주제에 대한 고민을 구체적으로 가지고 만난다면 자리가 더 풍성할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하지만 첫 술에 배부를 수는 없는 법. 사람들이 많아 와주고, 서로 얼굴을 익히고 이야기를 나눈 것만으로 큰 뜻있다. 여기다가 부모가 아이와 함께, 교사가 어린이들과 함께 하는 자리는 흔한 문화가 아니지 않는가.

 

문화란 거창한 그 무엇이 아니라 삶이 곧 문화가 되어야 한다. 우리네 일상을 돌아보고, 살아가는 삶의 지혜와 풍성함을 서로 나누는 데서 삶의 문화가 이루어지지 않겠나. 이웃들과 긴 호흡으로 문화를 자급자족하는 지역사회를 꿈꾼다.